
국회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도는 가운데 증인 채택 건을 놓고 여러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고려해 기업인 소환을 자제하자는 분위기 속에 일부 인사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표적인데, APEC 회의 흥행의 키를 쥔 인물이어서 재계 전반에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23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태원 회장을 28일 종합감사 증인으로 채택한 것과 관련해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협조를 구하겠다며 조율을 예고했으나, 협상이 공회전하는 모양새다.
여야는 지난달 국감 증인·참고인을 추리면서 최태원 회장을 포함시킨 바 있다. 신청인으로 파악되는 야당 강민국 의원은 사유를 계열사 부당 지원 실태 점검 차원이라고 적시했다.
다만 국감 시작 기업인 상당수는 증인·참고인 명단에서 사라졌다. APEC 회의와 같은 국가적 행사를 앞둔 만큼 재계 인사 소환을 줄이는 게 좋겠다는 당정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그러나 최 회장의 이름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강민국 의원 측이 확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의원실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문제는 야당이 지정한 최 회장의 출석 날짜가 APEC 일정과 겹친다는 점이다. 최 회장은 28일 개막하는 'APEC CEO 서밋' 의장으로서 국내외 주요 인사를 맞이하는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같은 날 열리는 정무위 종합감사에는 현실적으로 참석하기 어렵다.
특히 최 회장은 APEC 행사의 규모나 분위기를 반전시킨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글로벌 기업 CEO와 만나 참여를 독려하는 등 홍보대사로서의 행보를 이어왔다. 그 결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맷 가먼 AWS CEO, 사이먼 칸 구글 APAC 부사장, 사이먼 밀너 메타 부사장 등 글로벌 빅테크 경영진이 연이어 참석을 확정지으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 회장은 AI 생태계에 대한 경영철학도 공유한다. SK그룹이 CEO 서밋에서 '퓨처 테크 포럼 AI'를 주관하는데, 최 회장이 기조연설에 나서며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 마련을 위한 전략을 제안할 계획이다.
덧붙여 글로벌 반도체 시장 '큰 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함께하는 이번 행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의 추가 도약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렇다보니 야당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전세계적 이벤트를 앞두고 이를 책임지는 핵심 인사에게 압박을 가하는 게 과연 국익에 부합하느냐는 의구심에서다. 힘을 과시하려는 일종의 보여주기식으로 비친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타 기업 인사와 달리 유독 최 회장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일례로 강민국 의원도 웰스토리 부당 지원 의혹과 관련해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환했다가 감사 직전 철회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 출석이 단순히 책임을 묻는 절차가 아니라 정치적 이벤트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기업은 물론 국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APEC 회의를 앞둔 상황이어서 우리나라의 국제 비즈니스 행사 운영 역량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