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겪거나 배워 아는 한국인에게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남 얘기 같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인 1871년 프랑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설 속 선생님이 설명한다. “이제부터 알자스와 로렌 주(州)의 학교에선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에서 왔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니 아무쪼록 열심히 들어주세요.” 그해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눈물을 머금고 알자스·로렌 두 주를 독일에 넘겼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학생들을 향해 교사는 이렇게 외쳤다. “한 민족이 노예가 되더라도 자기 나라의 말만 지키고 있으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1871년 전쟁 이후 프랑스와 독일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두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모두 적이 되어 싸웠다. 프랑스·독일 젊은이 수백만명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장에서 대포와 기관총에 으스러졌다.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2차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 국내에는 ‘패전국 독일을 철저히 짓밟아 다시는 우리를 위협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독일에 맞서 싸운 연합국 지도자들 중에서도 으뜸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처칠은 1950년 연설에서 “유럽을 재건하려면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독일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후 프랑스 지도자들은 독일을 향한 국민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요구를 과감히 받아들여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발족시켰다. 이는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역에 풍부한 철광석과 독일 루르 일대에 많이 매장된 석탄을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독일은 알자스·로렌의 철광석을 탐내고 프랑스는 루르의 석탄에 눈독을 들인 것이 양국 간 불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온 만큼 아예 분쟁의 소지를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ECSC는 훗날 유럽공동체(EC)를 거쳐 오늘날의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 수백년에 걸친 역사적 악연을 뒤로 한 채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힘을 합쳐 EU를 이끌고 있다.
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알자스주 콜마르를 방문했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2일 콜마르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난 지 8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1944년 6월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이 실시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이후 빠른 속도로 프랑스의 해방이 이뤄졌으나 독일과 인접한 콜마르 등 알자스 지역은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나도록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콜마르 탈환을 위한 싸움은 2차대전 도중 프랑스 국토 안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로 기억된다. 독일의 침략에 나라를 잃은 쓰라린 기억은 결코 잊지 않되 EU의 틀 내에서 독일과 최대한 협력하려는 프랑스의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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