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요즘 잘나가는 민주주의 연구자들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공저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 판별법으로 극단적 정치세력, 그리고 폭력과 선을 긋는지를 보면 된다고 했다. 2020년 1월6일 미국 연방의회 건물 난입 사건과 선을 긋지 못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한 공화당 지도부를 사이비 민주주의자 사례로 들었다.
비슷한 시험대에 오른 중도보수 정치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곧 있을 총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독일 기독민주연합(기민련)이 그중 하나다. 이 중도보수 정당은 지난달 29일 연방의회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과 연합해 이민 규제 강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난민 신청이 거부된 이민자를 구금하고 미등록 이주자의 입국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비록 결의안이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 차원에서 유지된 ‘방화벽’이 무너진 첫 사례였다. 방화벽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 정치권의 뼈저린 반성의 산물로 ‘민주주의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주류 정당이 극우 세력과는 손잡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급기야 퇴임 후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온 기민련 소속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나섰다. 메르켈은 30일 기민련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극우 정당과 협력하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그 영향인지 31일 구속력 있는 이민 제한 법안은 가까스로 부결됐다. 이틀 전 결의안에 찬성한 일부 기민련 의원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 메르츠는 내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 전역에 일어난 큰불”은 이민자 유입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독일 보수 정당이 이 정도로 우경화된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들은 중심을 잡아주는 메르켈 같은 원로라도 있다는 점에서 아직 완전히 선을 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어떤가. 애초 방화벽이란 게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결국 불길에 타 죽는 줄도 모르고 곁불이라도 쬐려고 달려드는 부나방 같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