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한 달간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 수가 74만2167명이다. 지난해 관람객 36만1493명보다 약 두 배 늘어난 수치다. 여름방학인 데다 ‘케데헌’ 열풍으로 뮷즈(뮤지엄+굿즈)를 사려고 몰려든 인파가 어마어마하다.
지금 한창 전시 중인 두 개의 전시를 연거푸 돌아봤는데,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장치들이 눈에 띈다. ‘RFID 태그 기법’ 같은 디지털 시스템이다. RFID 태그 기법이란 무선 주파수(RF)를 이용해 물체나 사람을 식별하는 기술로, 태그에 저장된 고유 정보를 리더기와 비접촉으로 송수신하는 시스템이다.
오랜 유물·자료와 소통하는 디지털
젊은 관람객 모으는 새 도구로 등장
상설전시관 3층에선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일본 미술, 네 가지 시선’전이 한창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미술과 문화 그리고 그 속에 깃든 특유의 정서를 이해하는 계기를 위해 마련됐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중요문화재 7건을 포함해 40건을 출품했는데, 이 가운데 38건은 국내서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찰나의 감동’을 주제로 한 세 번째 공간이다. RFID 태그 시스템은 바로 이곳에 놓여 있다.
일본 문화에선 자연의 변화나 인생의 덧없음 앞에서 느끼는 마음의 울림을 ‘아와레(あはれ)’라는 정서라 부른다. 특히 일본 고유의 시가 ‘와카(和歌)’ 같은 고전 문학에서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가을에 잠시 꽃을 피우는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와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소재다.
RFID 태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법은 이렇다. ‘내리는 눈’ ‘손짓하는 억새풀’ 등의 문장이 적힌 검은 종이를 시스템 판 위에 올리면 커다란 직사각형 라이트 박스 위로 억새풀과 흰 눈이 날리면서 와카 전체 문장이 떠오른다. 와카의 기본 형식이 총 31음절의 짧은 시가이고, 라이트 박스 위로 딱 알맞은 분위기의 영상까지 함께하니 ‘아와레’라는 정서를 어렴풋하게라도 알 것 같았다.
지난 5월 29일 서울 창동에 개관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는 ‘디지털 보존복원실’이 있다. 미술관에서 수집한 소장품을 보존하기 위해 낱장의 원본사진을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복원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이 공간의 상주 직원은 ‘AI 사진 복원사’인데 주요 역할이 ‘기계 감상 시스템’으로 관람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사용 방법은 이렇다. 공간 벽면에는 미술관이 디지털로 복원·보관하는 수십 명 사진가의 작품 사진 카드들이 놓여 있다. 관람객은 그 카드 중 3장을 선택하고 이를 연결하는 짧은 이야기를 생각한다. 이후 카드 3장을 기계 감상 시스템에 올리면 AI 복원사가 자신만의 감상평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기자는 김광석의 노래로 유명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구본창의 제주도 신혼부부 사진, 이경모의 어린 아이들 사진, 김동희의 굿판 사진 3장을 올렸다.
이걸 보고 AI 복원사가 평한 감상을 한 줄로 요약하면 “결국 이는 각기 다른 삶의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이다. 기자가 생각한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지만, 어찌 보면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AI 복원사의 얼렁뚱땅 눙치는 실력에 어이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했다.
오래된 자료와 유물들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과거와 만나는 장소다. 전시 특성상 공간이 대부분 어둡기도 하다. 그랬던 공간에 디지털 시스템이 들어오니 최첨단 미래 과학이 만들어낸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젊은 친구들이 재밌어할 수밖에.
오랜만에 반짝 반짝하는 LED 빛을 만난 오래된 유물과 자료들 또한 새로운 얼굴로 단장하고 잠을 깨지 않을까. 물론 이 부분은 SF·판타지 영화감독의 몫이 아니라 박물관·미술관 기획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