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시경』으로 여름 나기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諸子百家). 드라마 사극에서나 언급되는 책들과 사상가들의 제언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일가를 이룬 사상가들의 뜻 깊은 이야기, 동양 고전은 언제고 한 번은 제대로 읽고 싶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서점가에 『논어』 『주역』 『장자』 『손자병법』 등을 새롭게 재해석한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언제, 무엇부터 읽어야 할까’이다. 한문학자 김영죽씨는 “사서삼경을 읽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요즘 같이 뜨거운 여름날 휴가를 이용해 도전하려 한다면 옛 선비들이 뜨거운 여름날 물가에 발 담그고 유유자적 시를 읊었 듯, 『시경』 속 시 구절부터 한 번 읽어보는 게 어떨까” 제안한다. 예나 지금이나 시 속에는 삶을 향한 예찬과 애잔함, 고단함과 풍류가 묻어 있기에 언제 읽어도 시대를 넘어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획 서정민 기자
시대를 관통한 지식인들의 통찰과 경험이 축적된, 인간 이해의 유서 깊은 보고(寶庫).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에서 다양한 변주로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그것을 우리는 ‘고전(古典)’이라 부른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한국·중국·베트남·일본)에서 고전이라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제자백가(諸子百家), 예기(禮記), 춘추(春秋),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이 그것이다. 일단 익숙한 단어이긴 한데, 막상 “어떤 내용이지?” 물으면 망설여진다. 마치 출근길에 매일 보는 사람이지만 누구냐고 물으면 결국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마는 뻔한 결론 같다.
만세사표가 강조한 필수과목 ‘시’

사서삼경부터 간단히 짚어보자. 유가의 핵심 경전인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가리키며, 이를 통칭해 ‘칠서(七書)’라 부르기도 한다. 노자·장자·묵자·한비자 등은 제자백가에 속하며, 유가를 제외한 도가·묵가·법가 등 여러 학파가 포함된다. 이때 ‘제(諸)’는 ‘여럿’, ‘자(子)’는 한 사상의 체계를 세운 스승에 대한 존칭이다. 공자·맹자·장자·노자의 ‘자’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였다.
혹자는 동아시아 고전을 두고 “우리 것이 아니잖아요?” 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공유해 온 철학이며 공동 문자, 공동 선에 대한 윤리 감각은 더 이상 ‘남의 것’일 수 없다. 이를테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非人也)며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맹자 공손추 상』)라는 ‘인간의 최소 기준’을 우리 모두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 고전은 어느 한 나라, 한 왕조, 한 방향의 고착된 철학이라 규정할 수 없다. 고전 속의 정확한 문장을 외우지 못해도 좋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다면, 이미 고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그 다음은 선택과 집중이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여름이다. 고려시대 사학에선 ‘하과(夏課)’가 있었다. 더운 날씨에 지칠 때쯤, 치밀한 논리 전개와 공방을 잠시 벗어나 산수 초목 사이에서 시심(詩心)을 기르고 시부(詩賦)를 짓는 특별 수업을 운영했다. 학생들에겐 일종의 여름 방학인 셈이었다.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는 읽고 싶으니 ‘교조적이지 않으며 너무 고상하지만도 않은, 일상의 희로애락이 역력한 텍스트를 소개하라’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시경』을 추천할 것이다. 평소에 『시경』의 세계가 궁금했다면 이 더운 여름, 딱 지금이 그 타이밍이다.
『시경』은 공자가 직접 편집한 책이다. 자식과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 그가 선택한 핵심 과목 역시 ‘시’였으며, 지식인이라면 300여 편의 시를 배워 때로는 훌륭한 외교 수단으로, 때로는 스스로와 민심을 살피는 척도로 활용하길 바랐다. 사서 곳곳에 『시경』의 시들이 인용되어 있으니 이를 읽고 나면 사서를 읽는 깊이가 확연히 달라진다. 만세사표(萬世師表)인 공자가 그리 중시했다면, 우리도 한 번쯤은 이 책을 들춰볼 만하지 않을까? 공자의 선택! 그 하나로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스승에게 배운 『시경』의 구절을 학인들과 읊고 즐기는 시간, 나의 목요일이 ‘시경 읽는 시간’이 된 지는 벌써 5년 째다. 『시경』의 시들은 한시(漢詩) 즉, 표의문자로 조합된 정서의 흐름이다. 그러니, 처음엔 번역을 위주로 읽다가 차츰 한자의 뜻을 새기며 천천히 읊어보기를 권한다. 허다한 번역서 중에 친절한 책을 발견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한문 문법의 걱정 따위는 잠시 미뤄두었으면 한다. 마음에 드는 몇 구절만 발견해도 3000년 전 시심(詩心)이 조금씩 열리면서, 이내 놀라게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와 다름없는 ‘그들을’ 만나게 될 테니까.
경전과 역사 촘촘히 교직된 고전
『시경』에 묘사된 인간사는 그야말로 다채롭다. 사랑의 설렘, 이별과 배신, 노역의 고단함과 가족의 애틋함까지 감정의 폭, 묘사한 대상은 놀라울 정도다.
여기, 상대방의 무심한 태도에 상처 받은 이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저 깜찍한’, ‘나와 말도 하지 않는’ 저 아이는, 분명 ‘나에게’ 이별을 고했던 전 연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밥도 잘 먹는다. 시의 행간에 상심과 자존심, 애틋함과 체념이 줄타기 하는 중이다. 그 옛날 이 짧은 시에, 어떤 독자는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 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라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물론, 밥 잘 먹고 잘 버틴다는 호언장담이란 게 결국 상심의 반동(反動)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 어떠했는지는 현재로서 알 도리가 없다. 그저 이 시를 읽고 있는 ‘나의 경험’과 조율하는 게 가장 편하다.

팍팍한 일상을 사는데, 어디 사랑 타령만 할 수 있을까. 『시경 소아(小雅) 사모(四牡)』 제1장에는 과중한 업무량, 노동과 책임에서 오는 피로의 공감대가 녹아 있다.
시를 읽다 보면 반복되는 야근에 귀향과 휴식을 갈망하는 직장인의 얼굴이 포개지고, 다크 서클 가실 날 없는 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작품을 함께 감상한 지인 중 열에 아홉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며 웃픈 하소연을 쏟아내곤 했는데, 급기야 ‘이 시를 외워야겠다’며 다짐 하는 이가 한둘은 꼭 있었다. 시 속의 주인공은 슬픈데, 나는 위로 받는 마법 같은 경험. ‘비슷한 처지’란 그 자체로 최상의 위로이기 때문이다.

한편, 부모 형제의 애틋한 가족애를 다룬 시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독자를 울린다.
읽을 때마다 목이 콱 막혀온다. 특히, 전장(戰場)에 있는 막내 아들의 입을 통해 어머니 마음을 읊어 보여주는 장면은 시의 애절함을 배가 시킨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변방과 고향, 양방향의 광각(廣角)으로 전달되는 셈이다. ‘살아서 오라’ ‘버려지지 말라’는 부모의 바람이 꼭 전쟁 나간 아들에게만 유효한 것이겠는가? 삶은 이미 전쟁과 같고, 부모의 걱정은 시시각각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이처럼, 『시경』의 시들은, 참다 못해 뱉어낸 누군가의 시름이자 흥겨운 노래이며 애타는 고백이었다. 변방을 지키는 병사의 탄식, 사랑에 울고 웃는 연인들, 정무에 지친 이들의 넋두리까지, 온갖 인간사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 시대와 나라를 달리하는 세트장에 다양한 출연진이 나름의 서사를 구사하는 『시경』. 그 리듬을 좇다 보면 어느 한 지점에서 시적 화자와 내가 공명하는 초연결을 반드시 경험할 것이다.
『시경』은 ‘경경위사(經經緯史)’ 즉, 경전과 역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교직된, 힘 있는 고전이다. 하지만 그 힘에는, 그물침대처럼 무게를 받아내는 탄성도 있다. 이 여름, 『시경』에 누워 흔들흔들 피서해 보시라. 일상을 가볍게 받쳐주어 쉬게 하는, 그렇게 무해한 여름을 선사할 것이다. 찜솥 같은 날들 속에서, 구절구절 몰입하다 더위조차 잊는다면 그게 곧 피서 아닐까?
즐거운 오독과 단장취의(斷章取義·남의 글 일부를 전체 뜻과 관계 없이 인용하는 일)는 『시경』이라는 고전과 친숙해지는 과정이자 덤이다. 부디 경전의 권위와 정치적 함의에 눌려, 알기도 전에 두려워하거나 멀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죽 성균관대 동아시아 미래가치연구소 책임연구원 한문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