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도 맞아? 고기 마음껏 먹고, 술이 물처럼 싼 이 도시

2025-04-22

인도 남서부 아라비아해 연안에 자리한 도시 고아(Goa).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확신이 없었다. ‘인도 여행’이라면 델리에서 이미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불안과 혼란을 이용해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는 장사치들과 여기저기서 쏘아 올리는 소음, 여기에 무질서하게 싸질러 놓은 소똥까지.

하지만 고아는 달랐다. 기차 밖 풍경부터 델리와 딴판이었다. 고아에 닿자, 푸른 야자나무 숲과 너른 논밭 그리고 바다가 시야를 꽉 채웠다. 2014년 12월 그 풍요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한 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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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도니까 사서 고생을 하는 것도 낭만이 아니겠냐며, 델리부터 목적지인 고아까지 장장 40시간의 기차 여행을 감행했다.

열차 안은 이미 수용 인원을 한참 넘어선 듯했다. 인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을 알고 싶다면 기차 내부를 들여다보면 된다. 아수라장 그 자체다. 태연하게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지인을 쫓아내고서야 나는 간신히 짐을 놓을 수 있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해치고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그 틈을 또 다른 현지인이 메꿨다. 나는 비좁은 침대 위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며 꼬박 이틀을 보냈다. 기차는 안내와 달리, 8시간이나 더 연착됐고, 우리는 48시간 만에 고아에 도착했다.

지옥에서 벗어난 뒤 만난 고아는 천국 같았다. 일단 고아에는 타 지역에선 쉽게 보기 힘든 세 가지가 있었다. 성당과 소고기 그리고 술이다. 450년 동안 포르투갈 지배 하에 있었던 고아는 힌두교도보다 기독교도가 많았다. 해서 도시 곳곳에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성당 주변을 거닐다 보면 유럽의 휴양 섬에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힌두교의 영향력이 적어 고아에서는 소고기·돼지고기 등의 육류도 맘껏 맛볼 수 있었다. 수많은 지역에서 한 달 살기를 해왔지만, 고아만큼 해산물이 맛있는 고장도 없었다.

고아 사람은 코코넛 야자 수액을 발효시킨 ‘토디 식초’를 요리에 즐겨 사용한다. 시큼하면서 단맛이 도는 토디 식초는 게·새우 같은 해산물 요리와 특히 잘 어울렸다. 코코넛과 고추 그리고 각종 향신료가 더해진 이른바 ‘고안 푸드’를 다 먹어볼 기세로 나는 한 달을 꽤 전투적으로 보냈다.

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고아에서는 술이 물처럼 쌌다. 관광 활성화를 위한 주정부의 세금 정책 덕분이다. 그 때문인지 고아에서는 술병을 손에 들지 않은 여행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나도 매일 같이 해변에 앉아 지는 해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인도에 있지만, 양껏 마시고 취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곳 그게 바로 고아였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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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에도 겨울이 있다. 건기에 해당하는 12~2월 평균 기온이 25도 언저리에 머무는데, 이때가 고아 최대의 성수기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해변에서 숙소를 구하는 건 거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신기하게도 고아의 바닷가는 나라별로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었다. 이를테면 A해변은 독일, B해변은 영국, C해변은 일본, 이런 식이다. 우리가 머문 모르짐 해변은 러시아 구역이었는데, 겨울 성수기인데도 꽤 가성비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숙박 중개인 스웨따 덕분이었다.

당시 고아에서는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숙박 시스템으로 집을 내놓는 이가 많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영어가 가능했던 스웨따는 움직이는 복덕방 역할을 하며 민박과 여행자 사이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장사 수완 좋은 그가 우리에게도 숙소를 안내해줬다. 이것이 우리가 뜬금없이 러시아 구역에 짐을 풀게 된 연유다.

벽보도 메뉴판도 모두 러시아어인 모르짐에서 우리는 어딜 가나 튀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온 유일한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모르짐에 모인 러시아인들의 연말 파티는 꽤 공격적이었다. 밤새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건 기본이고, 음주 상태로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이도 많았다.

러시아 폭주족이 활개 치는 환락의 동네였지만, 서핑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고아에서 나는 온종일 파도 위에서 놀았다. 가끔은 늦은 밤 해변의 바에서 코코넛 주스와 함께 ‘고아 트랜스’라 불리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전자음악의 강한 비트, 이 두 가지 조합의 중독성이 대단했다.

어디 가나 ‘샌님’ 소리가 따라다니는 침착한 성격이지만, 고아에서만큼은 내 심장도 빠르게 요동쳤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연말을 즐겼던 그 겨울의 러시아인들처럼, 나도 하루쯤 놀아봤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볼 때가 있다. 양껏 취하고, 정신을 놓으면서.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고아 한 달 살기

비행 시간 : 12시간 이상(델리에서 국내선 항공편 환승 권장)

날씨 : 11~3월(12월과 1월 극성수기는 피할 것)

언어 : 힌디어와 영어

물가 : 베트남과 비슷하거나 조금 비싼 정도

숙소 : 500달러 이상(집 전체, 극성수기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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