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나물 문화, 오래된 채식의 지혜

2025-04-22

[전남인터넷신문]봄비가 내리는 날이다. 초록의 싹 위로 내리는 빗방울은 봄나물을 키우고,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이맘때 남도의 전통시장에 나가보면, 봄비를 맞은 듯 신선한 봄나물들이 환히 미소 짓고 있다. 주름진 고령자들이 그릇에 담아 파는 봄나물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오래된 채식의 지혜다.

최근 채식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구를 생각하고, 건강을 챙기며, 동물의 권리를 고려하는 식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밥상 위에 자연을 올려왔다. 바로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남도에서 태어나 자란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산나물 비빔밥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양푼에 고사리, 냉이, 취나물, 도라지나물, 밤까지 넣고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고추장을 조금 넣어 비벼 먹었던 그 비빔밥.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고 마음이 정갈해지던 음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채식은 나물과 함께 그렇게 소리 없이 자리해왔다. 나물 문화는 단순한 요리법이 아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절의 흐름을 따르며, 최소한의 조리로 생명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다. 절에서 공양으로 올리는 산채 요리 또한 육식 없이도 식탁이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채식주의자들은 종종 고민에 빠진다. “비건 식당은 왜 이렇게 적을까?”“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나 전통 속에 해답이 있다. 나물 반찬 몇 가지, 따뜻한 밥 한 공기, 된장국 한 그릇이면 훌륭한 한 끼가 완성된다. 한국의 채식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평범함 속의 위대함’이었다.

남도에서는 지금도 전통시장에서 나물이 나오고, 시골 밥상에서는 여전히 나물이 주요한 반찬으로 올라온다. 여러 지자체가 사찰음식이나 지역 밥상을 개발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오래전부터 애용되어온 전통 나물 문화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를 방문한 외국인 채식주의자들이 채식 위주의 식당을 찾지 못하는 현실과도 대조적이다.

물론 오늘날의 채식은 더 복잡하다. 영양소, 대체육, 라이프스타일 등 고려할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은 미래로 가는 힌트’라는 사실이다. 남도의 전통적인 나물 문화, 나물로 활용되던 산채들은 채식을 위한 자원으로 매우 훌륭하다. 동시에 채식주의의 가장 한국적인 형태이자,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밥상 위의 나물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자연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전통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이보다 좋은 재료는 없다. 지역의 밥상을 개발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전남의 지자체들이 전통 나물을 지역의 정체성과 연계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초록의 봄을 맞아, 오랜 시간 밥상 위에 자연을 올려왔던 우리의 전통을 다시 살려내자. 그것이 지역관광을 풍성하게 만들고, 동시에 농가의 수입과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미래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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