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경종호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

2024-11-27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비 오듯 쏟아지는 은행잎을 맞으며 아이들이 깔깔거린다. 그들 머리며 등허리, 책가방이 온통 노랑으로 물들어 있다. 어린 시절 내 감각이 되살아나 가을 햇살과 아이들 웃음소리에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쫙 펴진다. 문득 천진한 아이들, 저 아름다운 밑그림에 알록달록 채색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편 겨울이 오면 어쩌나, 세상은 이미 북풍이 불고 살얼음 끼고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지혜를 모아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모색해야 할 이때 서재 귀퉁이에 있던 경종호 시인의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을 꺼내 읽는다. 황금빛 은행이파리가 살랑살랑 날아와 내 가슴팍을 물들인다. 경종호 시인 덕분이다.

요즘 문학이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보인다. 디카시가 그렇고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 컬러링북도 마찬가지다. 한편 기성 시인의 동시로의 유입은 동심 회귀와 함께 아동문학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경시인 또한 시로 등단, 현재 아동문학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을 읽다 보면 경종호 선생의 성품과 문학적 결을 느낄 수 있다. 새싹 하나가 나기에도 수많은 인연이 있어야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심결에 새싹을 짓밟지 않고 사람인 “네가 ‘팔딱’ 뛰었던 것” 즉 생명 탄생 비화에는 사랑과 우정, 생명 존중 사상이 관통하는 것이다. 이번 컬러링북도 일관된 경향으로 탈무드 경전經典의 무거움을 해소하는 위트와 유머가 더해져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동료 교사와 작가들의 평을 빌자면 “동시 종합 놀이터를 방불케 하는 즐거움이 있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생각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탈무드에 기반한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입혀 색칠하면 ‘교실은 즐겁고 행복한 놀이공간”이 될 것이다.

‘즐거운 생각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밝게 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렇게 재밌는 상상이 된다’라는 탈무드의 말을 “지금까지 상어가 하늘에서 죽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어!/그러니까 상어가 하늘에 산다면 그래! 영원히 살 수 있을지도 몰라”-「말의 차이」

경시인의 탈무드 동시 버전을 두고 이안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탈무드는 동시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동시는 탈무드의 지혜에 가닿게 된다”

동시와 탈무드는 많이 닮았다. 억지로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번 컬러링북 27편은 시와 그림의 접목을 통해 관습과 종교적 편향을 초월 삶의 지혜를 스스로 찾게 한다. 다소 상투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경전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로서 눈매는 역시 날카롭다. 오랜 기간 교육현장에서 밴 현실감 넘치는 창의적 표현들이 그것이다. 바라건대 독자들이 동시에 응축돼있는 감동의 파문, 출렁이는 빛살을 색칠하면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은 본디 추상적이어서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없다. 그런데 컬러링북은 상상력으로 말의 빈 공간을 채우고 그림으로 구체화하니 언어의 약점을 보완한 셈이다.

산다는 것은 꽤 쓸쓸한 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부디 여백을 채우듯 테마가 있는 동시(풍경)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기를 바란다. 독자가 만날 탈무드 컬러링북은 아날로그적 놀이 형태로 집중력과 안정감을 줄 것이다.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응축된 언어의 확장력을 손수 실현해 보인다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이 쓸쓸하지만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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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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