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누구도 대응 못할 무기” 자화자찬…극초음속미사일 성공 맞나 [박수찬의 軍]

2025-01-12

시속 1만4688㎞.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인간이 발명한 그 어떤 것도 내기 어려운 속도다.

아득히 먼 거리를 순식간에 지나갈 수준의 고속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의 발명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나라는 일부 선진국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런데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이 이같은 인식을 뒤집었다. 음속의 12배인 시속 1만4688㎞의 속도로 1500㎞를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7일 밝힌 것이다.

군 당국은 북한의 기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북한이 2021년부터 시도해온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이 어떤 형태로든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사일 방어망을 돌파, 전략 표적을 타격하겠다는 북한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괌·주일미군 노렸나

북한이 이번에 쏜 극초음속미사일은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에 글라이더 형태의 극초음속 활공체(HGV)을 얹은 것이다.

IRBM이 매우 빠른 속도로 HGV를 대기권 바깥까지 밀어올리면, HGV가 활공 비행하면서 대기권에 재진입한다. 재진입을 한 뒤에는 다시 대기권 밖으로 올라가서 비행을 하다가 대기권에 재진입 후 지상으로 낙하한다.

고도 30~70㎞에서 불규칙적으로 비행하므로 방공망을 가동해도 경로를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고, 일반적인 탄도미사일보다 포착하기도 쉽지 않다.

먼 거리에서 조기에 탐지·추적해야 요격 가능성도 높이는데, HGV는 탄도미사일보다 낮은 지표면과 가까운 저고도로 비행하므로 요격하기가 까다롭다.

대기권을 빠른 속도로 넘나드는 HGV는 그만큼 개발하기가 어려운 무기다. 중국과 러시아처럼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서 기술을 확보하고 오랜 기간 검증을 거쳐야 실전배치가 가능하다.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기반과 충분한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난한 국가인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주장하는 1500㎞라는 비행거리에 그 답이 숨어있다.

북한의 미사일 활동은 정치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대내외적인 선전 작업에 의한 ‘강국’ 이미지를 구축해 미국 등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미사일이 발사된 평양 일대에서 남쪽으로 선을 쭉 그으면 일본 오키나와에 이른다. 평양과 오키나와의 거리는 1400㎞. 이번에 쏜 극초음속미사일 사거리에 포함된다.

오키나와는 면적이 일본 국토 전체의 약 0.6%지만 주일미군 전용 시설의 약 70%가 집중된 곳이다.

극동 최대 공군기지인 가데나 기지에는 미군 F-22, F-35 스텔스기가 순환배치되고 있다. 공격력이 대폭 강화된 F-15EX도 배치될 예정이다. 한반도로 빈번하게 출동하는 RC-135 전자정찰기도 가데나 기지를 이용한다.

미 해병대는 오키나와에 해병연안연대(MLR)를 주둔시킬 방침이다. MLR은 ‘2030 미 해병대 발전 전략’을 통해 만들어진 부대다. 적이 점령한 최전선 도서 지역에서 적 함정과 전투기 진출을 억제하고 바다를 장악하는 임무를 맡는다.

오키나와 주둔 주일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출동할 전력이다. 북한에 위협적이다.

일본 본토의 미군기지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도쿄까지 거리는 1300㎞ 정도다. 일본 서부 사세보부터 도쿄의 요코타에 이르는 주일미군 및 일본 자위대 기지가 모두 사정권에 들어간다.

이들 기지는 미·일이 SM-3 함대공미사일과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 등으로 보호되고 있다. 빠른 속도와 변칙적 비행궤도를 지닌 극초음속미사일은 미사일방어망을 회피할 확률을 높인다.

북한이 신뢰성을 갖춘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에 성공해 전력화한다면, 오키나와의 방어망에 또다른 도전이 될 수 있다.

지난 2021년부터 극초음속미사일 비행거리를 조금씩 늘려왔던 북한이 향후에도 사거리 연장을 지속한다면, 미군 전략폭격기와 핵추진잠수함 발진기지인 괌도 위협을 받는다.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은 고체연료 IRBM와 HGV로 구성되어 있다. IRBM이라면 최소 3000㎞ 이상을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발사는 IRBM이라고 하기에는 비행거리가 짧았고, 미사일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에 쏜 미사일이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추가 개량을 통해 제식명칭을 붙인다면 3000∼3500㎞까지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평양과 괌 거리는 약 3500㎞다. 괌에는 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PAC-3 등이 배치되어 있지만, 북한 극초음속미사일까지 저지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중국이 괌과 오키나와를 사정권에 넣는 첨단 무기를 잇따라 개발하는 상황에서 북한까지 가세한다면, 미국의 고심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시도는 성공할까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하나다. 북한이 정말로 중국·러시아처럼 고성능 극초음속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느냐다.

극초음속미사일 관련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열·단열 성능이다.

음속의 5배가 훨씬 넘는 초고속 비행을 하는 HGV는 표면 온도가 2000도가 넘는 초고온환경에 직면한다.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재진입하는 과정을 한 번 이상 거친다. 이를 견디려면 매우 강력한 내열·단열 성능이 필요하다.

초고온·초고압 환경에서 HGV 표면이 녹거나 깎여나가지 않도록 내열 코팅을 할 필요도 있다. 외부의 열이 HGV 내부로 전달되어 고장을 일으키는 것도 방지해야 한다.

전파가 차단되어도 통신과 센서 성능을 유지하는 기술, 초고속으로 방공망 회피 기동을 할 때도 정밀한 비행제어가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도 갖춰야 한다.

이 모든 기술은 개발 난도가 매우 높다. 전략적 의미도 커서 외부에서 지원해줄 기술도 아니다. 풍부한 기술 개발경험과 재정적 여유를 갖춘 중국과 러시아가 오랜 시간 독자적인 개발에 매달렸던 원인이다.

북한이 이같은 기술들을 모두 확보했을까. 북한은 음속의 12배 속도로 1500㎞를 날아갔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인정할만한 근거는 명확치 않다.

초고온·초고압 환경에 직면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HGV가 2000도가 넘는 초고온과 압력 등을 견디며 초고속·급기동을 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북한 발표에서 종말단계 재진입 등이 명확치 않은 것도 이같은 의문을 부추긴다.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 반 밴 디펜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전통적으로 시험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지만, 해당 기술이 작동한다는 것을 자체적으로 입증할 만큼 충분한 시험을 실시해야 하며, 현재 북한이 그러한 수준에 도달했는지 전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HGV에서 매우 중요한 성능인 방공망 회피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불확실하다. 북한이 정치적 선전과 기술적 제약 등을 고려해 초고속비행을 우선시했다면, 미사일방어망에 요격될 확률이 높아진다. 극초음속미사일의 의미가 퇴색하는 셈이다.

북한의 기술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정황도 있다. 북한은 신형 미사일에 새로운 탄소섬유복합재료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복합재료는 강도는 높이고 무게는 낮출 수 있다. 미사일 구조물의 무게를 줄이면 탑재체 무게나 비행거리를 늘리는데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할 때 섬유소재 제작기계와 동체를 보여줬다. 예전부터 탄소섬유복합재료 개발·생산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증거다.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기존의 연구결과를 검증, 더 우수한 복합재료 개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HGV와 추진체계 등의 개발 방향도 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 초기에는 액체연료를 쓰는 발사체를 사용하고, 원뿔형 HGV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신속한 발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고체연료 IRBM와 글라이더형 HGV를 결합한 극초음속미사일이 반복해 등장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의 개발 컨셉을 어느 정도 잡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개발 성공 여부나 시점 등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의 특성상 지도자가 설정한 방향으로 국력을 집중하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개발이 성공한다면 괌이나 일본 내 미군 기지 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한반도 유사시 증원전력을 제공받아야 하는 한국도 간접적이나마 위협을 받는다.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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