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장을 둔 중국과 미국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AI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므로 해당 시장에서 승기를 먼저 거머쥐기 위해서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 속에서도 중국은 AI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은 오는 2030년까지 AI 핵심산업 규모를 1조위안(약 200조원)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관련 산업 규모를 10조위안(약 2000조원) 이상으로 확대, 세계 최대의 AI 혁신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일부 보도에 의하면 중국은 오는 2035년까지 AI 핵심산업 규모를 1조7300위안까지 확장해 글로벌 점유율 3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을 향한 미국의 제재도 점차 거세지는 중이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 AI 칩을 수출하는 것을 통제하는 등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견제하고 있다. 지난 6일에도 미국 국방부는 중국 게임회사 텐센트, 메모리 반도체업체인 CXMT(창신메모리) 등이 중국군 지원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제재 수위를 높였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미·중 AI 공동연구 증가율도 2019년 28.2%에서 2020년 12.6%, 2021년 2.1%로 매년 크게 하락했다.
그럼에도 화웨이와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의 핵심 기업들은 스마트 반도체, 운영체제(OS), 대형모델, 머신러닝 분야에서 AI 기술혁신을 추진하며 내재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 중국의 AI 성장세도 매섭다. 일례로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는 얼마 전 오픈 소스 대형언어모델(LLM)인 '딥시크 V3'를 공개했다. 이는 6710억개 매개변수를 가지고 있어 메타의 '라마 3.1 405B'(매개변수 4050억개)보다 1.5배 이상 큰 규모다. 특히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오픈AI의 'GPT-4o' 등을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시장을 놀라게 했다.
스타트업인 딥시크가 557만달러(약 82억달러)만으로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에서다. 메타의 '라마 3.1 405B'가 5억달러(약 7300억원)가량 투입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체감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달 7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도 중국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은 AI 기반 자율주행차량부터 로봇청소기, AI로봇 등 기술력을 뽐냈다. 그중에서도 중국 가전기업 TLC가 AI로봇 '에이미(AiMe)'를 선보이며 가정용 AI로봇 시장에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앞선 CES에서 가정용 AI로봇인 '볼리', '이동형 AI홈 허브(Q9)'를 공개했던 바 있다.
중국의 IT기업들은 AI 시장 선점을 위해 사용자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는 지난해 5월 자사의 AI 모델 '큐웬'의 가격을 최대 97%까지 낮추는 등 더 많은 기업 고객 확보에 나섰다. 결국 AI 핵심은 데이터이기 때문에 가성비를 무기로 앞세운 것이다. 중국의 저가 전략은 AI 시장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공개한 'AI 성숙도 매트릭스' 보고서를 봐도 현 주소를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은 'AI선도국'으로 꼽혔다. 반면 한국은 일본,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들과 함께 이보다 한 단계 낮은 그룹인 'AI 안정적 경쟁국가'로 선정됐다.
이처럼 미국의 지속적인 견제에도 중국이 AI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투자 및 연구 인력 등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간한 '글로벌 정부·민간 분야 AI 투자 동향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3년 전세계 AI 투자액(정부 및 민간 합산)은 1419억달러였으며 그중 미국(정부 27억5000만달러, 민간 846억7000만달러)이 전세계 투자액의 약 62%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중국도 정부 21억1000만달러, 민간 91억7000만달러 등 112억8000만달러를 AI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투자금액은 전세계 투자액의 1.5~2.0%에 불과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공개한 '국가전략기술 R&D 인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AI 연구자수는 2만1000여명 수준이었다. 반면 중국은 41만1000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에 비해 한국은 연구인력이 2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국가적 지원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글로벌 협력망 구축도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선엽 STEPI 부연구원은 "한국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의 통합적 연계가 미흡하여 민간 혁신역량 성장의 한계로 작용하므로 하나의 정책방안으로서 두 부문 간의 정책적 소통채널 확충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라며 "국내 핵심기업들의 기술력과 산업 간 연계 강화에 주안점을 둔 과기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AI 산업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한중 첨단기술 기업들 간의 협력채널 확장에 대한 정책적 고민도 해야 한다"며 "미국, EU 등 여타 AI 선도국(지역)과의 무역 증진 및 통상협상에 있어 장벽으로 작용할 만한 기술요인을 식별하고 이를 토대로 한중 과학기술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