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간) 폐막한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를 찾은 국내 기업인들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꺼낸 ‘피지컬(물리적) 인공지능(AI)’이라는 화두에 주목했다.
황 CEO의 발언을 차치하고도 CES 2025 현장에서는 모든 산업군에서 실체 없던 생성형 AI가 물리적 실체로 실현되는 모습이 관측됐다. AI로 ‘게임의 법칙’이 달라지는 와중에 로봇·모빌리티·바이오 등 혁신 산업 영역에서 중국의 대두와 한국의 미흡한 준비에 대한 지적도 곳곳에서 나왔다.
CES 2025 현장을 찾았던 기업인들은 한목소리로 “피지컬 AI 시대에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전했다. 피터 배 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KIC) 실리콘밸리센터장은 “황 CEO의 기조연설이 전시 참여 목적의 50%였다”며 “물리적 AI 변혁을 인지하지 못한 회사는 2~3년 내 운명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준기 대동AI랩 대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으로 황 CEO의 기조연설을 꼽으며 “하드웨어에 AI를 얹는 게 아닌 AI를 위한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줬다”는 감상을 남겼다.
물리적 AI를 담을 ‘그릇’인 로봇 기술력에서 한국이 이미 뒤처졌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도 이어졌다. 미 동부의 대표 한국계 벤처캐피털(VC) 아델파이벤처스의 정태흠 대표는 “물리적 AI를 담을 로봇 기술에서 중국과 한국의 격차가 너무 크다”며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이미 뒤처진 게 아닌가 싶어 큰일”이라고 말했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대해서도 “지난해 중국과 한국의 바이오 스타트업 투자 규모 격차가 8배 이상 벌어졌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또한 “하드웨어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온 듯해 삼성과 LG가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며 “중국 모빌리티 업체들을 보면 현대차도 굉장히 급하겠구나 싶다”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상적으로 AI를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사용 사례를 제시한 기업들이 주목받았다는 평도 이어졌다. 장덕현 삼성전기 대표는 “AI가 기업간거래(B2B) 영역을 넘어 자동차·스마트폰·PC 등 실제 소비자가 사용하는 제품에 녹아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며 “AI가 기존 산업에 융합하며 게임의 정의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AI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문제 해결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임팩트AI 창업자인 박성혁 KAIST 교수는 “CES 2025 전시 키워드 중 주목도 1위가 AI 에이전트였다”며 “아직까지는 과도기적인 단계이지만 AI가 물리적 실체로 다가오며 답을 찾아가고 있어 내년 전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모든 산업이 이미 AI로 대전환을 겪고 있어 분야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5년 안에 무인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CES의 한 축인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올해 독일 3사와 현대차 등 완성차 제조사가 불참했다. 모빌리티 중심축이 완성차가 아닌 AI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정 대표는 “모빌리티 제조사가 AI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청 업체’가 되는 듯한 모습이 감지됐다”고 봤다. 정희진 SK하이닉스 벤처투자담당은 “모빌리티 전시도 자율주행 AI 플랫폼에 주목하며 차량 자체보다는 실질적인 운전 경험을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명노현 LS 대표이사 부회장 역시 가장 인상 깊은 전시로 아마존과 함께 모빌리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소나투스를 꼽았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도 AI로 연구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맞춤형 항암제 정보를 제공하는 임프리메드의 임성원 대표는 “AI는 이제 모든 분야에서 공기 같은 존재가 됐다”며 “‘넥스트 빅 싱’은 AI로 가속화한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가 될 듯하다”고 했다. 장승웅 텐마인즈 대표 또한 “슬립 테크 등 헬스케어 분야 전반에 AI가 필수화돼 큰 변혁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