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를수록 커지는 생존력···新냉전이 키운 '괴물'

2025-01-11

"작년까진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이 반도체·배터리·AI(인공지능)를 아우르는 첨단산업 영역에서 전방위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추격자 정도에 불과했으나, 미국과의 신(新)냉전 국면 속 산업에 화력을 쏟는 자국 정부를 등에 업고 명실상부 우리 기업의 경쟁상대로 급부상한 모양새다.

조주완 LG전자 CEO는 8일(현지시간) 글로벌 IT·가전 박람회 'CES 2025' 현장에서 중국 기업과 관련해 "원가 경쟁력이 모자란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며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해 실행에 옮길 때가 됐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그러면서 조주완 CEO는 "중국이 내수가 어렵고 미국과 분쟁으로 큰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위안화 절하 같은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면서 "기술과 제품 경쟁력으로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박람회에서 공개된 TCL·하이센스 등 중국 기업의 가전 신제품이 가격은 물론 디자인이나 기술 측면에서도 선진그룹에 진입했음을 감지한 데 따른 소회다. 한국과 중국 산업의 경쟁 패러다임이 '가격'에서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은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첨단산업서 입지 굳힌 중국···내친김에 '패권'까지

이렇듯 중국은 전세계 여러 산업 분야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다른 나라의 기술·제품을 모방하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물량 공세를 펴는 데서 나아가 선진 시장의 문을 두드릴 정도로 수준을 높였고, 이른바 '패권 경쟁'에도 가세했다.

디스플레이 부문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랜 기간 우리 기업이 선두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중국 측에 추월을 허용한 상황이다. 중국은 2021년 점유율(금액 기준) 측면에서 한국을 넘어선 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년엔 47.9%의 점유율을 달성하며 우리나라(33.4%)를 14.5%p 차이로 따돌렸다.

현재 우리 기업으로서는 고부가 영역인 OLED 시장에서도 절대적 우위를 자신할 수 없는 실정이다. 중국은 작년 1분기 전세계 물량의 49.9%(옴디아 집계)를 책임지며 처음으로 한국(48.7%)을 앞질렀다. 이후 우리나라가 재역전에 성공했지만, 점유율 격차는 크지 않다.

기술적으로도 바짝 따라붙었다. 맥킨지코리아의 2023년 보고서를 보면 2012년엔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1.9년 앞선 것으로 나타났으나, 8년 뒤인 2020년엔 차이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빅데이터 등 17개 기술을 포함한 IT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은 2012년엔 중국 대비 2.4년 앞선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2020년에는 오히려 0.3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美 견제에 기술력 키워 '맞불'···韓 제품 선호도↓

중국의 첨단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 중 하나는 미·중 양강의 '신냉전 체제'다. 보호무역주의로 무장한 미국의 견제가 계속될수록 중국이 역량을 높여 응수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현지 산업이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이 주요국과 함께 수출입을 통제하고 관세를 높이는 등 방식으로 공세에 나서자 중국 정부는 질적 성장으로 정책의 방향을 수정한다.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키워 궁극적으로 경제·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게 골자다. 그 일환으로 2023년 2월엔 관련 목표를 담은 '품질강국 2025' 로드맵을 수립했다.

물론 중국 정부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자국 제품 소비로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14억명의 인구와 무역장벽에 맞서 무기화할 수 있는 희귀자원이다. 실제 이들은 미국이 수출통제 대상에 특정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추가하자 텅스텐 수출을 막음으로써 맞불을 놨다. 모두 AI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품목이다. 최근엔 배터리 양극재 관련 기술과 희소금속 처리 기술의 수출 통제 강화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역 구조의 변화에서도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2024년 우리 대(對)중국 수출 규모는 1330억2600만달러로 집계됐다.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액수는 ▲2022년 1557억달러 ▲2023년 1248억달러 등으로 지속 줄어드는 추세다.

이러한 수치는 중국의 자급력이 향상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이엔드 제품까진 아니더라도 일반 품목에 쓰이는 중간재 정도는 현지에서 수급 가능하다는 얘기다.

산업연구원의 한정민 연구원은 2023년 보고서에서 대중 수출이 위축되는 구조적 요인으로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 상승과 경쟁력 격차 축소를 지목했다. 산업 고도화로 제조업 경쟁력이 향상되면서 이전보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줄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중 관계 개선 움직임···외교 정책의 대전환 필요"

이에 재계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의 국제 정세 변화를 고려해 우리나라가 외교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간에는 정치적 이유로 중국과 거리를 뒀다면 추후엔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미국이 이러한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그간에는 중국과 날을 세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소통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오는 20일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친밀한 사이임을 강조하며 당선 이후 비공식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취임 이후 미중 관계가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국 모두 자국보호주의의 큰 틀을 유지하겠지만, 그 안에서도 득실을 따져 협력하는 전략적 관계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수출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이고 판매·협력처"라면서 "경제 문제를 풀 때는 차가운 이성과 계산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는 철학을 내비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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