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 공수처 전철 밟지 말아야

2025-06-22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학계·법조계에서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고 제한 강화보다는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원칙적 공감대와 그 시기 및 방법 등 디테일의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 원칙적 정당성만을 앞세우고 디테일을 소홀히 해서 실패한 사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충분하지 않은가. 대법관 증원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해 대법원의 기능 자체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왜곡될 경우의 문제는 공수처 실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법원은 전체 법원의 무게 중심인 최고법원이며, 대법관은 그 핵심 인력이다. 대법관의 자격, 임명 절차와 방식은 재판의 공정성, 그 전제로서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 등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정당성 앞세워 졸속 증원 나서면

대법원 기능 훼손·왜곡할 가능성

사법부 장악용 코드인사 우려도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 문제가 없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삼권분립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것이며, 통제 없는 권력 집중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시 국무회의가 통제 기능을 못 했다고 비판하면서 여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대법관을 중장기적으로 30명까지 증원하겠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1년에 4명씩, 4년 동안 16명 전원을 이재명 정부에서 모두 임명하겠다는 것은 대법원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삼권분립을 형해화하는 위험한 방식이다. 그 위험성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 있다.

첫째, 현재 14명 정원의 대법관은 해마다 평균 2.3명이 교체되는데, 그때마다 인물난이 적지 않다. 그런데 4년간 4명씩 더해서 평균 6.3명을 임명한다면 인물난은 훨씬 가중될 것이다. 특히 김명수 사법부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한 이후 대법관 후보군으로 꼽을 수 있는 법관 인재풀이 많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둘째, 30명으로 대법관을 증원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 운영이 매우 힘들게 된다. 민사부와 형사부를 나눠 2개의 전원합의체를 두자는 말도 있지만, 민사와 형사에 해당하지 않는 분야도 많다. 더욱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만 민사와 형사로 나눈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법원 조직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런 사전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단 증원부터 하자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셋째, 이번 정부에서 4명, 그다음 정부에서 각기 4명씩 순차적으로 증원한다면 모를까, 이재명 정부에서 16명 모두를 증원하는 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법부 코드 인사와 대법원 장악 의도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지난 5월 1일 대법원의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뒤집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자아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9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며, 우리 헌법재판소 기능까지 일부 수행하는 최고법원이다. 주(州) 법원과 연방법원에서 충분히 심리한 사건 중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소수의 사건만을 선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제도다.

독일의 대법원은 전문분야별로 5개의 연방대법원, 즉 (민·형사사건 담당의) 연방통상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을 두는 전문법원 시스템으로, 대법관 수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대법관 증원은 굳이 따지자면 베네수엘라식이다. 전문성에 따른 법원 조직의 분화 없이 1개의 대법원에 대법관 30명을 두고 1개의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다. 오히려 현재보다 재판지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또한 대법관 코드 인사와 결합한 대법관 증원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베네수엘라의 예가 잘 보여준다.

대법관 증원은 이런 모든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말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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