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재판’ 무죄가 남긴 것

2025-11-27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징역을 살았다. 밀렵꾼인 그의 사냥용 총이 발각됐다는 이유로 5년형이 추가됐고, 4차례 탈옥을 시도한 괘씸죄가 덧씌어져 형량이 늘어난 것이다. 장발장이 감당한 가중처벌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도망친 장발장을 감옥에 넣는 일이 과업이었던 자베르 경감도 있다. 장발장이 존경받는 ‘마들렌 시장’이 된 뒤에도 자베르는 “범죄자는 영원히 악하다”는 신념을 꺾지 않은 극단적 법 수호자이자 가해자였다. 감옥에서 나온 장발장을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 받게 한 ‘노란 여권’ 역시 그에겐 전과자 증명서라는 가중처벌이었다.

미리엘 신부의 사랑과 용서가 장발장을 다시 태어나게 했단 것이 <레미제라블>의 서사다. 하지만 상처 없는 사랑과 용서가 있을까. 장발장에겐 빵 한 조각이 자신의 운명을 파멸시킨 상처도 컸지만, 약자에게 가혹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온갖 ‘가중처벌’이 더 큰 상처였다.

벌금 5만원의 1심 선고가 난 40대 하청노동자 김모씨의 ‘초코파이 절도’ 사건이 27일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재판부는 “냉장고 안에 있는 간식을 자유롭게 먹어도 된단 말을 들은 상황에서 절도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출입이 금지된 사무실에 들어가 과자를 꺼내 먹을 권한이 없단 걸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고 한 1심 판결에 대해 “각박하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한마디가 이 사건의 모든 것을 말한다. 당초 주의 촉구로 끝내려 한 원청이 사건 인지 8일 지나서야 고소한 것은 무엇이겠나. 김씨의 노조 활동을 압박하려 한 거라는 의심이 일 수 밖에 없다. 1심은 ‘아무나 간식을 꺼내 먹었다’고 한 동료들의 사실확인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벌금형만 받아도 실직 위기에 처하는 경비업법이 생계형 노동자들에겐 공포임도 가벼이 봤다.

노동자의 허기를 범죄로 만들고, 처벌 후에도 전과자·고용 제한이라는 불이익을 가하는 법은 따뜻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무엇보다 김씨에겐 배제·냉대·외면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150년 전 장발장이 ‘노란 여권’에서 해방됐던 것처럼, 지난 2년간 김씨를 짓눌렀던 모든 ‘가중처벌’도 당연히 무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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