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의 평온한 일상과 삶의 터전 보호는 국가의 기본 의무

2025-03-30

경북과 경남, 울산 등 영남지역 산불이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피해 규모는 정확한 집계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경북 청송군은 군민의 절반이 산불 이재민이 됐다고 한다. 산불 대피소에서 홑이불 한장에 의지해 다닥다닥 붙어 잠든 이재민들의 모습은 전쟁 피난민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우크라이나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피해지역 주민들의 사진과 영상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국가안보(국가안전보장)’는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만든 용어로 국가가 공포· 불안·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국가안보는 한 나라가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로 안팎의 각종 위협으로부터 국민과 영토·주권을 보호하는 일이다. 흔히 국가안보라면 우리는 국방과 외교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전시가 아닌 평시엔 국민의 평온한 일상과 삶의 터전을 유지하도록 하는 치안과 소방, 의료와 식량이 국가안보다. 헌법 제34조도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기본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집 앞 산등성이에서 치솟는 시뻘건 산불을 피해 자욱한 연기를 뚫고 대피소로 달리는 주민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불길 속에 고립된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걱정은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수돗물과 전기가 끊어져 밥을 해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는 피해지역 주민들이 “6.25 전쟁터가 따로 없다”는 하소연에 우리 재난대책의 현주소가 담겨 있다.

부품이 없어 다른 헬기 부품을 뜯어다 고쳐 써야 한다는 구식 러시아제 산불 진화 헬기, 고령의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의용소방,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이 불길 속에 고립되는 구호 체계, 기지국이 불에 타면 먹통이 되는 휴대전화에 의존한 경보 체계 등은 세계 10대 경제 혹은 군사 대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번 영남지역 산불을 뼈아픈 교훈으로 산불 진화는 물론 예방과 조림·육림 등 산림정책 전반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점검하고 혁신해야 한다. 최첨단 미사일과 전투기가 전시의 국가안보 전략자산이라면 최첨단 대형 소방헬기와 소방장비는 평시의 국가안보 전략자산인 만큼 국방에 준하는 소방안보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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