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주가톨릭병원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
한국전쟁 후 의료 사각지대 심각해
외국인 최초로 국내 의사 면허 취득
결핵 환자 무료 치료 위한 병원 열어
여든을 넘겨 백발이 성성하다. 하얀색 베일과 가운까지 걸친 모습을 보니 언뜻 순백의 성모 마리아상이 떠오른다.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는 의사다. 원주가톨릭병원이 현재 그의 집이자 일터다. 하루에도 4~5번씩 회진을 돈다. 때론 엄마처럼, 때론 누이처럼 환자 곁을 지킨다. 여느 의사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딱 하나 다른 건 독일 출신의 이방인이라는 점이다.

하이디 수녀가 처음 한국을 찾은 건 1966년이었다. 선교를 위해 낯선 한국 땅을 밟았다. 이제 한국은 그녀의 고향과 다름없다. 대부분의 일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60년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늘 그가 있었다. 최근에는 수십 년간 인술을 베푼 공로를 인정받아 ‘제4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대한의사협회와 보령이 85년 제정한 보령의료봉사상은 ‘한국의 슈바이처’를 발굴하고, 참된 의료인상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된 상이다. 하이디 수녀는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수상 소감을 전해달라.
처음엔 수상을 거절하고 싶었다.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고, 오랫동안 함께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병원 식구들 모두를 대표해 받는 상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 파견은 예상치 못했나.
원래는 아프리카 선교를 희망했다. 하지만 주어진 길이 바람과 달랐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입회한 후 66년 한국으로 파견됐다. 교육 봉사부터 시작했다. 서울 청계천 빈민촌에서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에게 밤마다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상황은 어땠나.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모두가 가난했고, 땅은 피폐했다. 나무가 거의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의료 문제도 심각했다. 그 당시 한국에는 폐결핵과 나병 환자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했다.
이때 하이디 수녀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가톨릭대 의과대학에 입학해 외국인 최초로 국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한국에 온 지 9년이 지났을 때다. 그는 “한국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몸소 체감했고, 환자를 돌보면서 전문적인 의료 활동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82년에는 강원도 원주에 가톨릭의원을 개원했다. 원주가톨릭병원의 전신이다.
올해로 개원 43주년을 맞았다.
지학순 주교(천주교 초대 원주교구장)의 요청이 있었다. 결핵 환자 치료를 부탁하셨다. 원주가톨릭병원은 결핵 환자를 위한 무료 병원으로 출발했다. 원주교구청 3층에 있는 작은 의원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매일 환자가 밀려들었다. 지금도 하루 150명의 환자가 이곳을 드나들며 의료 혜택을 받고 있다. 대부분 일반 내과와 노인의학에 관련된 환자들이다.
어떤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나.
우리 병원에는 생애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는 환자가 많다. 입원 환자 대다수가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였다. 그런데 병원 운영 초창기 시절 20대 후반의 한 젊은 환자를 받았다. 뇌사 상태로 전원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컸다. 다른 병원에선 손쓸 수 없다고 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환자에게 꾸준히 운동을 시키고, 다정한 말을 건넸다. 6개월 뒤 환자는 스스로 걸어서 병원을 나갔다. 기적이었다. 아직도 한쪽 다리에 마비 증세는 있지만, 대학까지 나와 장애복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70세가 훌쩍 넘었다.
의료 봉사에 대해 설명하는 하이디 수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는 게 힘에 부칠 법도 한데 그는 “기쁘다”고 했다. 원주가톨릭병원에서 외래 진료는 물론 야간·주말 당직까지 나서서 한다. “이젠 한국이 제 고향이에요. 다시 선택할 기회가 온다고 해도 이곳으로 올 거예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과 지금처럼 웃으며 지내고 싶어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계획하지 않는다. 일생 목표를 세운 적이 없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한 가지 바람은 있다. 의료 손길이 필요한 곳에 더 많은 노력이 모였으면 좋겠다. 봉사는 거창한 게 아니다. 특별한 열정과 의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게 가장 사람다운 행동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