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재검토한 결과이지, 이걸 (박진희) 보좌관님이나 (유재은) 법무관리관, (이종섭) 장관님이 검토한 게 아니잖습니까. (…)
이 부분 정리가 안 되면, 저희 검토 보고서는 본질이 변질됐다고 판단됩니다.”
2023년 8월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의 초동조사 결과를 재검토했던 국방부 조사본부는 ‘채 상병 사건의 혐의자 변경’을 요구해온 박진희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에게 이렇게 항의했다. 조사본부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상급자 6명에게 혐의가 있다는 취지로 재검토해 작성한 중간보고서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제출한 지 이틀 뒤였다. 조사본부는 이 중간보고서를 낼 때도, 중간보고서를 수정한 최종보고서를 내기 전까지도 “임 전 사단장 등을 혐의자로 특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11일 경향신문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김모 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과 박 전 보좌관은 2023년 8월16일 3분47초간 통화했다. 조사본부는 이틀 전인 그해 8월14일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명시한 중간보고서를 만들었다가, 8월20일에 임 전 사단장을 비롯한 해병대 상급자 4명이 혐의자에서 빠진 최종보고서를 경찰에 넘겨 논란이 일었다.
당시 통화에서 박 전 보좌관은 다음날(2023년 8월17일) 열리는 이 전 장관 주재 회의를 언급하며 “제가 드린 문구를 잘 검토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전 단장은 “주신 워딩(문구) 그대로는 못 올라간다”며 “(혐의자에서 제외된) 4명에 대해서는 ‘이런 정황이 있어서 수사가 필요하다’는 보고로 1차 토의를 하고, 장관님이 결심이 있으면 정리되는 단계로 가야 한다”고 반박했다. 임 전 사단장 등을 혐의자로 명시한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를 이 전 장관 앞에서 직접 설명할 기회를 보장해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전 보좌관은 “(범죄 혐의) 정황만 있으면 안 된다”며 보고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이에 김 전 단장은 “우리(조사본부)가 재검토한 결과이지, 우리 검토 결과를 (박진희) 보좌관님이나 (유재은) 법무관리관, (이종섭) 장관님이 검토한 게 아니지 않냐” “끝까지 기록을 통해 확인된 내용을 일단 장관님한테 가지고 가서 건의를 드리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김 전 단장은 조사본부에 결론을 바꾸라는 ‘윗선’의 지시가 부당하다고도 항의했다. 김 전 단장은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이 있으면 우리는 (경찰에) 넘겨야 한다”며 “그런데 그것(혐의자 축소)을 얘기하면, 우리한테 최초에 그 임무를 주면 안 되는 거였다”고 맞받았다. 현행 군사법원법은 군이 군 관련 사망사건이 벌어졌을 때 1차적인 사실확인(조사) 작업만 할 수 있고, 이때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지하면 즉시 경찰에 사건을 넘겨 수사하게 돼 있다.
김 전 단장은 이어 “정황이 있으면 있는 대로, 정황에 다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이래서 수사가 필요하다’는 워딩은 꼭 들어가야 된다”며 “그 부분이 정리가 안 되면 저희 보고서는 검토의 본질이 변질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사건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박 전 보좌관이 조사본부 지휘부와 총 69회 통화를 하는 등 집요하게 외압을 가한 정황을 다수 포착하고 지난 3일 그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박 전 보좌관은 이날 특검팀에 출석해 첫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