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신임 NC 감독이 2017년 은퇴식 때 입었던 검은색 재킷을 입고 31일 감독 취임식 무대에 섰다. 은퇴식 당시 이 감독은 구단이 만든 ‘다이노스 아너스(honours) 재킷’을 입었다. 현역 시절 유니폼을 안감으로 쓴 세상에서 한 벌 뿐인 옷이다.
은퇴식 재킷을 입고 나온 이 감독은 현역 시절 등번호 27번을 그대로 쓴 감독 유니폼을 새로 입었다. 은퇴식 재킷을 입고, 현역 때 등번호 유니폼을 다시 입는 것. NC 은퇴 선수 출신 중 처음으로 NC 사령탑에 오른 이호준 신임 감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 감독은 사실 현역 시절 27번이 아닌 72번을 쓰려고 했다. 팀에 합류한 24일 첫 인터뷰에서 그는 “선수 시절 27번으로 좋은 기운을 많이 쓴 만큼, 이제는 새롭게 시작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팬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신생팀 NC의 ‘초대 주장’ 이호준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았다. 72번을 달겠다는 이 감독에게 구단 직원들이 몰려와 팬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했다. 팬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이 감독도 굳이 72번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취임식 후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은 “팬분들이 글을 많이 올려주셨더라. ‘그냥 달라면 달아!’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서 ‘예 알겠습니다’ 하고 27번 달았다”고 웃었다. 이 감독이 감독 선임 후 처음으로 창원NC파크를 찾았던 지난 24일 이미 2명의 NC 팬이 현역 시절 이 감독의 유니폼을 들고 찾아와 멀리 관중석에서 그를 응원했다. NC에서 은퇴한 지 이미 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이 감독은 “처음 NC 왔을 때 맏형 같던 느낌의 27번을 아직 많이 기억하시더라”며 “처음 왔을 때 유니폼 들고 환영을 해주셔서 그때 이미 감동을 먹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감독은 이날 취임식에서 과거 주장으로 자신이 강조했던 ‘팀 퍼스트’를 재차 강조했다. 동시에 경쟁을 통한 건강한 팀 문화를 만들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열심히 훈련하고 성과를 낸 2군 선수에게 충분한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했고, 선수 스스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울 것은 새로 배우겠다고 했다. 주전급 선수들을 향해서도 “휴식 차원의 교체가 주어질 때도, 교체된 선수가 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긴장과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감독으로 선임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머릿속은 내년 시즌 준비로 벌써 복잡하다. 진행 중인 마무리 캠프와 내년 스프링 캠프를 두고 고민이 많다. 캠프에 누구를 참가시킬지부터가 감독으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 감독은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고민이 많다. 벌써 힘들다. 다른 감독님들 마음을 이제 조금은 이해를 하겠다”고 했다.
1군 코치진 구성은 마무리 지었다. 신뢰 관계가 두터운 서재응 전 KIA 투수코치를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그 외 주요 보직은 2군 코치들을 승격시켰다. 선수 시절 함께 했고 코치 시절에도 인연을 오래 맺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용훈 투수코치, 조영훈 타격코치가 1군 투타 메인 코치 역할을 한다. 수비코치를 봐왔던 진종길 코치는 3루 작전코치로 보직을 바꿨다. 이 감독은 “진종길 코치는 3루에서 정말 빛나고 존재감이 있었다”고 기대를 표했다.
그 외에도 할 일이 많다. 손아섭, 박민우 등 고참 선수들과 먼저 면담을 했다. KBO 다른 구단 감독들에게도 먼저 연락해 인사를 했다.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이범호 KIA 감독과도 이미 통화를 마쳤다.
이 감독은 “아내가 이범호 감독보고 얼굴부터 ‘호랑이상’이라 잘 어울린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했다. 저한테는 ‘공룡상’이라고 하더라. 한번 기대를 하겠다”고 웃었다.
이 감독은 선수로는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던 창원NC파크로 돌아온 소감을 묻자 “서재응 코치한테 여기는 팬분들 목소리가 워낙 잘 들리는 구장이다. 실수하면 바로 반응이 나온다.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웃었다.
이 감독은 이어 “지금은 환영도 많이 받고 기대도 많이 받고 있지만, 한편으론 부담도 크다”면서 “목표는 4대6이다. 4번 욕을 먹고, 6번은 칭찬받으면 좋겠다. 4번 욕먹더라도 6번은 칭찬받을 수 있도록 잘 해보겠다”고 말했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야구 역시 이기면 칭찬받고 지면 비난을 받는다. KBO리그에서 10번 싸워 6번 이기면 거의 어김 없이 리그 1위를 다툴 수 있다. 이 감독이 “6할이면 저기 위로 가지 않느냐”며 유쾌하게 새 시즌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