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한 히나마츠리 풍습의 후쿠오카 마을을 가다

2025-02-19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도 아키츠키 히나순례(古都 秋月 雛めぐり)’,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朝倉市) 아키츠키(秋月) 마을에 도착하니 길거리 사방에 펄럭이는 히나마츠리(雛祭り)를 알리는 홍보용 깃발과 전단이 넘쳐난다. 히나마츠리란 딸아이를 위한 잔칫날로 집안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딸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크라’는 뜻에서 히나 인형을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예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풍습으로 혹시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인데 이때 쓰는 인형이 히나인형(ひな人形)이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에 치렀지만, 지금은 다른 명절처럼 양력 3월 3일이 히나마츠리 날이다.

어제(18일), 아사쿠라시(朝倉市) 아키츠키(秋月) 마을을 찾은 것은 아키츠키박물관(秋月博物館)에 미리 요청한 자료 열람을 위해서였다. 낮 2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후쿠오카 시내 숙소에서 일찌감치 출발하여 열차를 3번 갈아타고 아키츠키마을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 반쯤이었다. 마을의 지리를 몰라 대형 주차장이 있는 매점에 들어가서 따뜻한 차라도 한잔 하려다가 고도 아키츠키 히나순례(古都 秋月 雛めぐり) 홍보 전단을 보고 차 한잔 보다 ‘마을을 돌아보아야겠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평일(화요일)이라 그런지 고도(古都)가 고도(孤島)처럼 느껴졌다. 고도 아키츠키 히나순례(古都 秋月 雛めぐり)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풍스런 마을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오히려 너무나 조용해서 ‘이곳도 인구 감소로 폐허 동네(?)가 되어가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히나인형을 잔뜩 진열해 놓은 한 가게를 발견했다. ‘자유롭게 들어와 감상하세요’ 라는 안내판에 이끌려 고택 안으로 들어서니 중년부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천천히 구경하세요. 우리 가게에 전시하고 있는 히나인형들은 여러 가정에서 위탁 판매로 나온 인형들입니다.” 중년부인은 남편과 함께 ‘골동·고민구(骨董·古民具)’ 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내가 들고 있는 전단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가게가 (9번)에 위치하고 있는 가게라고 볼펜으로 색을 칠해주었다. 전단지에는 히나인형가게를 포함하여 염색공방 등 다양한 가게가 27곳이나 소개되어 있었다.

“히나인형은 원래 3월 3일 이전에 집안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입니다. 3월 3일이 지나서 인형을 치우면 딸이 시집을 늦게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지금도 남아있으나 집안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집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예전처럼 히나인형 장식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합니다. 우리 가게에서 다루고 있는 히나인형들은 전부 일반 가정에서 팔아달라고 내놓은 것들입니다.”

사키야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부인은 ‘요즘 젊은 엄마들의 전통의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가게 안을 찬찬히 살펴보니 꽤 값을 치르고 샀을 인형들이 즐비했다. 인형 앞에 써놓은 가격을 보니 ‘3만엔(우리 돈으로 약 29만원)’ 짜리도 있고 더 비싼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히나인형인 것을 생각하면 이 가격은 헐값처럼 보였다. 히나인형은 수제품으로 대개는 인형 장인(匠人)들이 만들기에 그렇다. 이제 일본의 히나인형 장인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인형 자체를 구매하지 않는 시대라고 가게 주인이 말하지 않는가.

히나인형은 가지고 노는 인형이 아니라 집안에 장식해 놓는 인형이라 도쿄처럼 집이 좁은 곳에서는 보통 2단짜리 히나인형을 장식한다. 하지만 집이 크면 3단 또는 5단짜리 인형을 장식하는 집도 있다. 장소를 많이 차지하기에 좁은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히나인형 장식 구조를 보면 제일 위 칸은 화려한 궁중의상의 일왕 부부가 앉아 있다. 그 아래 단은 궁녀 인형을 올리고 그 아래 단은 악사들이 자리하는데 단이 많을수록 비싸고 화려하다.

히나마츠리의 유래는 천여 년 전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모셔두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여자애들이 가지고 놀았으며 어머니들은 냇가에서 종이 인형을 만들어 떠내려 보내면서 장차 딸에게 몰아닥칠 나쁜 악귀나 액(厄)을 막아달라고 빌었다. 곧 액막이 인형구실을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 초기에는 겐로쿠히나인형(元祿雛)이라 해서 비단옷을 12겹씩 입히거나 쿄호히나인형(享保雛)처럼 대형인형이 등장하는데 점차 이들 인형에 금박을 입히는 등 호화롭게 변질하여가자 에도막부는 소비를 조장한다 해서 일시적으로 대형인형을 금지하기도 했다.

히나인형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라 히나인형 판매의 절정은 2월 한 달이다. 이때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히나인형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호텔이나 관공서 등의 로비에도 히나인형을 장식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듯이 말이다.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朝倉市) 아키츠키(秋月) 마을의 ‘고도 아키츠키 히나순례(古都 秋月 雛めぐり)’는 2월 14일(금)부터 3월 3일(월)까지 마을 일대에서 진행한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고도(古都)를 거닐며 여자어린이를 위한 인형장식 ‘히나마츠리(雛祭り)’의 의미를 새삼 새겨본다. 참고로 남자어린이를 위한 날은 5월 5일로 고이노보리(모형 잉어띄우기) 풍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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