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힘이다] <죄와 벌>과 탄핵 정국 속에서 읽는 정의의 얼굴

2025-04-17

역사는 늘 격랑처럼 밀려온다. 우리는 그 안에서 매일같이 흔들리고, 어느 순간 그 파도에 휩쓸려 방향을 잃는다. 지금 대한민국이 맞이하고 있는 탄핵 정국은 단지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다.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며 우리는 묻는다. “이것이 정의인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정확히,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독서’라는 고요한 행위 속에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수백 년 전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고,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상황을 미리 겪어보는 ‘정신의 예행연습’이다. 인간은 직접 겪지 않으면 배우지 못한다고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그 말의 한계를 넘는다. 그는 타인의 실패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깨달음을 통해 한 걸음 앞선 생각을 품는다. 실제로 어떤 역사적 사건이 벌어져도, 책을 읽는 자는 이미 그와 유사한 상황을 문학이나 철학, 역사 속에서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당황하지 않는다. 더 깊이 사유하고, 더 멀리 본다. 독서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내면의 닻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 지금, 그것은 19세기 러시아의 한 인간의 고백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사회가 내놓아야 할 반성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인간이 정의를 오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권력을 오용하거나, 도덕을 왜곡하거나, 혹은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는 자신을 ‘비범한 인간’이라 여기며,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유익하게 쓰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후부터 그는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며 점점 파멸해 간다. 주변 인물들—헌신적인 소냐, 집요한 포르피리 수사관, 삶의 경계에 선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소냐의 사랑과 함께 인간성과 신앙을 회복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마주한다. <죄와 벌>은 단순한 범죄소설이 아니라, 죄를 저지른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인간다움을 되찾는 여정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타인의 고통 위에 세운 ‘공익’이 진정한 선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정말 알고 있는가?”

이제 눈을 현실로 돌려보자. 공적인 자리에 선 이들이 ‘공익’을 외치며 사적인 일탈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며,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왜곡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라스콜리니코프를 목격해왔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욕망과 위선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가 한 일이 정말로 죄가 되느냐’는 식의 물음은 결국 정의에 대한 조롱이다. <죄와 벌>은 바로 그 오만함에 대한 문학적 심판이자 경고였다.

탄핵은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이름으로 내리는 가장 무거운 판단이다.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그 신뢰를 저버렸을 때, 그것을 되돌리는 유일하고도 정당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말한다. “다들 그렇게 살아.” “잘못했지만, 결과는 괜찮았잖아.” 그러나 그런 말들은 죄의 무게를 부정하고, 윤리의 기준을 흐린다. 우리는 그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 자기기만인지를, <죄와 벌>을 통해 이미 배웠다.

책을 읽는 사람은 단지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얻는다. 혼란과 혼돈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독서의 힘을 빌린 사람이다. 독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낳고, 정의와 불의의 경계선을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 왜 우리가 이 문제에 분노해야 하며, 왜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나는 작가로서 믿는다. 문학은 이 세상의 도덕적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독서는 우리 내면에 침묵하고 있던 양심을 깨우고, 그 양심은 결국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책은 여전히 등불이다. 그리고 그 등불을 들고 있는 사람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 그는 이미 수많은 작가와, 수많은 문장과 함께 걷고 있으므로.

정의는 결코 권력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가장 평범한 시민의 얼굴을 하고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문을 열어야 할 시간에 와 있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책 속에서, 우리는 이 순간을 수없이 예행 연습해왔기 때문이다.

장하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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