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살펴보자. 어제 담아둔 따끈따끈한 것에서부터 기억도 가뭇한 수년 전 사진들까지 당신의 소중한 순간들이 시기별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만의 어느 특정한, 사람과 사람들 그리고 공간과 사물들이 파노라마 풍경처럼 펼쳐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과장하자면 각각의 생명성으로 부각된 모든 사진들이 줄지어서 자기부터 봐달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대충 훑지 못할 당신은 천천히 서두를 일 하나 없이 흐뭇하게 즐기면 된다.
어떤 사진 앞에서 당신은 눈을 못 뗀 채 뭉클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재차 반복해서 보다가 깊은 상념으로 눈물이 쏘옥 빠질지 모른다. 괜찮다. 모두 괜찮은 순간이다. 이는 사실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재탐색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덧대자면 당신과 특정 시간을 공유했던 모든 존재들과 다시 만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우연과 필연의 존재들. 때론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때론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한 이들이 있고, 마음의 평온을 얻거나 지독히도 고독했을 익숙하거나 낯선 어느 공간들도 있다. 애지중지 여기거나 하루아침에 마음에서 멀어진, 하다못해 괜스레 당신의 시선을 끌어당겼을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나 잡초 같은 수많은 세상 사물들까지. 모두가 당신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설명하는 그 존재성과 접속하는 이 시간은 그래서 당신과 스스로 마주하는 귀한 시간이다. 모두가 당신이 바라보고 가슴에 담아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당신이 접속하는 이 시간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진 속 대상들의 일체적 공통점은 당신이 그 앞에 서 있었다는 것에 있다. 스마트폰 속에 담긴 이 모든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당신 삶을 관통하면서 개별적 존재로서의 당신에게 주어진 귀한 생명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과 다름 없다. 예술이나 기록 등의 전통적 의미를 넘어 사진은 자기존재성과 맞닿는 ‘살아 있는’ 나를 느끼는 행위이자 자기만의 감정을 담아두는 적극적 실천행동으로서 충분한 역할이 가능하다. 자기만의 감정이 이입된 순간 당신은 기꺼이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을 켜고 사각 프레임 안에 세상을 담아뒀을 것이다. 그 대상과 함께 있는 당신에게 그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나 역시 그리고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번잡한 서울 생활을 떠나 최근 시골 동네로 터전을 옮겼다. 짐을 싸고 옮기고 다시 풀어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쓰던 물건들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었다. 특히 암투병을 하던 아내의 항암치유식을 만드는 데 썼던 조리도구들과의 ‘이별’은 무척 간단치가 않았다. 낡고 닳아 더 이상 쓰기에 무리가 있어 이참에 정리를 하는 게 맞기는 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주섬주섬 모아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다. 셔터를 누르니 가슴에 저장되는 느낌이 훅 들었다. 이제 망각만큼은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나름의 안도감에 이 소소한 이별이 그리 서운하지만은 않았다.
만약 동의한다면 당신의 일상 속에 사진의 역할을 한번 바꿔보기를 권한다. 당신의 가슴과 접속하는 시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