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
화엄사
불교용품점에서 죽비 하나 구했다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방棒과
할喝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내 안에
부처를 모시고도
부처의 주소를 찾아
여기저기 밖으로만 기웃거리던 내
어리석음
탁……
죽비竹? 소리가
나를 깨운다.
*류인명 시인의 시집 ‘화엄사 홍매화’에서
류인명 <시인, 전북문인협회 이사>
<해설>
평생 개달음을 추구해온 류 시인의 시에서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생활 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고 이를 깨달음을 향하는 내적 주제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말할 수 있으리라.
‘지금 여기’라는 실존의식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시를 비롯한 모든 예술의 공통적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 ‘죽비’는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면서도 교과서적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깨달음을 지향하는 불교시로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먼저 기에 해당하는 1연 “화엄사/ 불교용품점에서 죽비 하나 구했다”은 진술은 비록 평범하지만 이 시 전개의 출발점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 시의 시적 리얼리티를 감지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2~3연은 ‘승’의 단계로서 ‘죽비’를 구입한 사유가 제시된다. 여기서 죽비가 지닌 ‘방棒’과 ‘할喝’의 기능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선사가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줄 때 사용하는 ‘몽둥이’와 ‘고함’이다. 깨달음의 그 자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선사들은 각 개성에 따라 몽둥이나 고함소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죽비는 시적 화자에게 긴장을 풀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상징물로 사용된 것이다.
이 시의 주제는 ‘전’에 해당하는 4~5연에 놓여 있다. “내 안에/ 부처를 모시고도// 부처의 주소를 찾아/ 여기저기 밖으로만 기웃거리던 내/ 어리석음” 시인은 이 표현을 자신뿐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새겨 보려는 것이다. 독자들이라고 해서 이 말의 속뜻을 모르겠냐마는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체험이다. 깨달음은 말이 아니라 실존적 체험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역시 자기 안에 내재하는 법신불을 시를 통해서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은 6~7연이다. “탁……// 죽비소리가/ 나를 깨운다.” 이 시의 주제에 맞게 죽비소리도 들리고 죽비 주인의 뜻에 맞게 기능을 하고 있다. 결국 그래도 남는 것은 부처가 내 안에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있는데 이는 감상자의 나름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밖으로만 기웃거리는 내 어리석음”이라는 표현은 시적 균형을 이루면서 내 안의 부처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러니 효과를 보여준다.
김광원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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