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선고 후 첫 대외 행보로 오픈AI CEO 회동
인공지능·로봇 등 미래 산업 빅딜 나올 가능성도
[미디어펜=김견희 기자]삼성전자가 9년여 만에 사법 리스크를 털어냈지만, '삼성 위기론'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지난 1년 사이 삼성전자의 주가가 30% 가량 떨어지는 등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AI(인공지능) 관련 대규모 투자나 대형 인수합병 등 결단을 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고등법원의 무죄 선고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발목을 잡아왔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 이 회장은 2020년 시작된 부당합병 사건 재판으로4년 여간 공판에 출석했다. 2016년 시작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까지 합치면 9년이란 시간을 서울 서초동에 드나들었다.
긴 시간 이 회장의 경영 족쇄로 삼성전자는 유례없는 위기론을 맞았다. 회사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은 약화돼 경쟁기업과의 초격차 전략이 추진력을 상실했다. 또 파운드리 및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도 주도권을 잃어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 수혜를 크게 입지 못한 분위기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도 15조 원으로, 23조 원을 기록한 SK하이닉스에 추월당했다. 이 회장의 적극적인 피드백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는 업계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인공지능·로봇·바이오등 미래 산업 위한 빅딜 나올까
이 회장은 이날 오후 삼성 서초사옥에서 전날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다. 무죄 선고 이후 첫 대외 행보인 셈이다. 이 회장은 올트먼 CEO와의 회동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유치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올트먼 CEO가 로봇사업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구상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도 있다. 삼성전자 역시 향후 패러다임을 바꿀 로봇 분야가 미래 핵심 분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회사는 지난해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미래 로봇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대표이사 직속 조직인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번 회동뿐만 아니라 이 회장은 앞으로도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극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간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강조해온 만큼, 이를 위한 투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하만 인수(80억 달러) 이후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선 적이 없다. 그렇다 할 빅딜이 없는 가운데 AI를 비롯해 고성장이 예견되는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등기 이사 복귀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회장은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지난 지난 2016년 등기이사를 사임했다. 하지만 운신이 자유로워진 만큼 등기이사로 복귀해 책임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만은 인수 이후 영업이익이 2년 연속 1조 원을 돌파했다. 인수 첫해 600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현재로선 이재용 회장의 최대 업적은 하만 인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도 업적작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분야는 인공지능·로봇·바이오다. AI와 로봇은 미래산업에 부합하고 바이오 분야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내부에서도 대형 M&A를 기대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현재 삼성은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등 주력 계열사에 옛 미래전략실 일부 기능을 갖춘 조직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전 만은 못한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에서 삼성그룹 감사실 역할을 하는 '경영진단실'을 신설하고 미래전략실 출신 최윤호 사장을 초대 실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미래전략실 부활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반도체(DS) 부문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도 힘쓸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직접 나서 HBM3E에 대한 엔비디아 품질테스트 통과를 위한 경영행보도 이어갈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 트럼프발 '관세 전쟁' 대응 마련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대책 마련에도 속도를 낸다. 우선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발 관세 피해 최소화에 노력을 기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USMCA)을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다음달부터 25% 관세 부가 조치를 취했다. 해당 나라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일 수록 타격이 크다.
삼성전자는 현재 캐나다에 50곳, 멕시코에 18곳의 법인을 뒀다. 캐나다에선 태양광·풍력·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을, 멕시코에선 제조·생산을 하는 만큼 캐나다보단 멕시코에 둔 법인의 관세 피해를 최소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멕시코 현지 생산 물량 일부를 미국 내 공장으로 이전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 생산 공장에서 생산되는 TV와 건조기 등 일부 물량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다. 고율 관세가 부과된 제품을 여러 생산지에서 생산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생산 기지를 이전하거나 탈 멕시코를 준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이 대중 견제 강화로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망을 한층 더 공고히 하면서 삼성전자의 중국 반도체 공장도 영향권에 들게 됐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공장은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37% 정도를 담당한다. 다만 중국 생산 물량 대부분은 중국에서 소비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