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 재판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경영 전면에 복귀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삼성 위기론’이 대두하는 와중에도 그는 이렇다 할 메시지나 쇄신 조치 없이 최대한 존재감을 낮춰왔다. 9년여 만에 사법 리스크를 털고 운신이 자유로워진 이 회장의 경영 실력이 본격적인 검증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그의 발목을 잡아왔던 재판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 2020년 시작된 부당합병 사건 재판으로 그는 4년여간 총 96차례 공판에 출석했다. 2016년 시작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까지 합치면 9년 가까이 검찰·법원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을 드나들었다.
그사이 삼성전자는 유례없는 위기론에 휩싸였다. 회사의 대들보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초격차’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에 직면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및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도 주도권을 놓친 탓에 인공지능(AI) 붐의 수혜를 거의 입지 못했으며, 부서별 칸막이 문화와 경직적인 소통 구조로 인해 혁신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지난해 영업이익(15조원)은 SK하이닉스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위기론에 대한 이 회장의 직접적인 피드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지난해 고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회장 취임 2주년,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등을 맞아서도 대내외 메시지 없이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다. 이 같은 태도는 재판을 받는 도중에 정치적·사법적 파장을 일으킬 만한 소지를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오너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삼성전자가 쇄신 인사 같은 파격적 조치를 단행하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재판 부담을 털어낸 이 회장은 경영 전면에서 회사의 위기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당장 다음달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할지 여부가 그의 ‘책임경영’ 의지를 가늠할 시금석으로 꼽힌다. 4대 그룹 회장 가운데 이사회 미등기이사 신분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과거 ‘미래전략실’ 같은 그룹 컨트롤타워를 다시 꾸릴지도 주목된다.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제는 피고인(이 회장)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등기이사 복귀 계획 등에는 말을 아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대두한 관세장벽 등의 대외적인 문제를 이 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결하려 할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그가 강조해온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이나 신사업 발굴에도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삼성도 위기론을 두고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라는 핑계를 많이 대왔다. 이번 판결로 핑곗거리가 사라진 것”이라며 “이 회장으로서는 진짜 경영 실력을 회사 안팎에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