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트레커스
“매미산은 삼성전자로 팀을 옮긴 2000년부터 뛰던 곳입니다. 다른 선수들은 로드를 뛰지만, 저는 산을 더 많이 뛰었어요. 여기서 훈련하고 나서 이듬해 보스턴 마라톤(2시간9분43초)에서 우승했죠. 어렸을 때 집(충북 천안시 성거읍 명우리)에서 학교(성거초·중) 가는 길이 딱 이랬어요. 2.5㎞였는데, 중학생 때까지 왕복 5㎞를 매일 걷고 뛴 거죠. 그게 마라토너로서 밑천이 됐던 것 같습니다. 또 근긴장이상으로 죽다 살아난 것도 매미산 덕분이죠.”
수원과 용인에 걸쳐 있는 해발 158m의 매미산. 선수 시절 이 산을 뛰어다니며 훈련한 이봉주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또 50대에 느닷없이 찾아온 근긴장이상이란 인생 고비를 이 산에서 이겨냈다. 그를 두 번 살려준 산이다.

이날 트레킹 시작은 용인시 농서동 농서근린공원이었다. 여기서 5분 거리에 그가 22년 전 신혼집을 차린 아파트가 있고, 예전 삼성전자 육상팀 합숙 장소가 근방에 있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사 온 이유도 훈련 장소 가까이 살기 위해서였다.
그의 복장은 단출했다.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하드쉘(견고한 아웃도어 의류 소재) 재킷, 유행이 한참 지난 등산 바지, 조깅과 트레킹을 겸할 수 있는 러닝화, 그리고 익살스러운 벙거지와 ‘짝짝이’ 등산 스틱이었다. 스틱은 걷는 동안 몸의 밸런스를 위해 늘 가져간다고 했다. 아직 몸이 완전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배낭은 메지 않았다. 그런데 양손에 쥔 스틱의 색깔이 각각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