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땅 밑에서 울린 질문들

2025-04-14

독일의 한 대형 유튜버는 2060년이면 한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그 원인으로 저출생을 지목했다. 충격적인 발언이지만, 낯설지 않다. 이미 도처에 암울한 전망이 넘쳐난다.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만끽할 여유도 없다.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시기다. 법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 집단의 무책임한 대범함(?)이 또 다른 불안을 초래하고 있지 않는가.

그 와중에, 2025년 4월14일 경기 광명시의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실종됐다. 이는 서울 강동구 한복판에서 거대한 싱크홀로 1명이 사망한 지 채 3주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서울시가 그동안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싱크홀 위험 지역 지도를 비공개해 왔다는 사실이다. “사람 목숨보다 집값이 더 중요하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인가요?” 이 질문은 단지 분노의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지적하는 말이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시에서만 122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다음은 어디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싱크홀은 단순한 도시 재난이 아니다. 또 하나의 기삿거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싱크홀 사태를 통해, 땅 아래에서 울려 퍼진 질문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네 가지다.

첫째, 싱크홀은 원인이 발생한 장소와 실제로 붕괴가 일어나는 장소가 다르다. 지하수가 흘러들고 토사가 빠져나간 지점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위치에서 땅이 꺼진다. 즉, 싱크홀은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다. 어디서 터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원인은 인간의 개입과 점검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인과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우리가 관리하는 구역은 괜찮다”며 위험을 외면하거나 남의 일로 간주한다. 이러한 방심이 바로 재난을 일상에 침투시키는 첫 번째 균열이다.

둘째, 우리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조차 너무 쉽게 잊는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과잉된 정보의 소음 속에서 정작 중요한 위험을 식별하지 못한다. 즉, 이미 ‘정보의 싱크홀’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 망각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다. 정보의 선택과 배열은 사회적 메커니즘이며, 위험의 감각은 정치적으로 조율된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망각하도록 설계된 시스템 안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진정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의 싱크홀이 아니라 그것을 반복적으로 초래한 사건들과 제도들 간의 ‘관계성’이다. 토목 공사, 부동산 정책, 정보 비공개, 행정 판단, 재난 관리, 공공성의 실종 등이 어떻게 맞물려 또 다른 침하를 만드는지 주목해야 한다.

셋째, 싱크홀은 지반 아래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삶의 기반’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노화, 질병, 돌봄의 공백, 실직, 가족 해체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회적 싱크홀’이다. 특히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심리적·경제적 침하로 몰아넣는다. 그런 틈새를 이용해 누군가는 보험을 팔고, 누군가는 장례 서비스를 홍보한다. 누군가의 붕괴가 또 다른 이의 수익이 되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싱크홀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온 ‘지하’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우리는 지상의 인간을 떠받치고 있던 수많은 기술들과 그 위태로움을 망각해 왔다. 과학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말처럼, 우리는 ‘기술 망각’(the forgetting of technics)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쩌면 도시에 인간이 가장 큰 싱크홀일지 모른다. 나아가 지구의 입장에서도 인간이 그럴 수 있다. 기술의 맹목적인 진보와 개발이 초래한 결과를 얼마나 더 마주해야 그러한 망각의 늪에서 벗어날 것인가.

결론은 분명하다. 도시의 지반만 보수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붕괴되지 않는 관계’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다. 기술이 인간의 기억을 대신하고, 정치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시대. 우리는 공동의 기억과 윤리의 기반을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진짜 싱크홀은 단지 땅 밑의 구덩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지탱해 온 신뢰와 책임, 공공성과 연대라는 토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지난 4개월간 우리가 목격한 현실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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