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로 꼽히는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에도시대 말기 하급 무사 출신으로, 강력한 추진력으로 일본 근대화 출발점인 메이지 유신에 기여했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1960년대 신문에 연재한 소설 <료마가 간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됐다. 자민당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민주당 정부가 미·일 갈등,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비틀거리던 2010년대 초반 일본은 료마가 활약하던 난세를 방불케 했다.
오사카의 빈민가 출신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56)는 이 무렵 ‘현대판 료마’로 각광받던 인물이다. 변호사 시절 TV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은 뒤 2008년 38세 나이로 오사카부(府) 지사 선거에서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고, 만성 적자인 오사카부 재정을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2010년 4월엔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를 창당해 광역단체장과 당대표를 겸했고, 2011년 오사카 시장 선거도 압승했다.
하시모토 돌풍의 기반은 오랜 불황에 따른 일본 사회의 좌절감과 이를 치유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었다. 일본 제2의 도시임에도 도쿄일극주의 심화로 쇠퇴 일로를 걸어온 오사카의 열패감이 그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하시모토는 전국정당 일본유신회를 창당해 한때 총리 후보 1순위에 올랐으나 2012년 아베 신조 자민당의 재집권 후 기세가 꺾였다. 하시모토는 2015년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그의 창당정신을 계승한 일본유신회는 전국정당 입지를 굳혔고, 지난 20일 다카이치 사나에의 자민당과 연정에 합의해 정권 참여에 성공했다.
한국에는 자민당보다 더 우파라는 점이 주로 부각되지만 유신회 주요 정책목표가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포인트다. 미국의 주나 독일의 연방주처럼 47개 광역자치단체를 통합해 권한과 자율성을 가진 도주(道州)로 재편하는 ‘일본형 연방제’가 목표다. 자민당과의 연정 합의서에 오사카 부(副)수도 구상의 입법화를 포함시켜 그 첫 단추를 끼웠다. 서울일극주의가 일본 이상으로 심각한데도 지역정당이 불법인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치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