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형 불안성 새로고침 단체’부터 ‘봄이여 오라’까지···아카이브로 돌아본 탄핵 정국

2025-04-04

12·3 비상계엄 사태는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 ‘내향인’까지 깃발을 만들어 광장에 나서게 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야당이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말한 뒤에는 ‘광란의 칼춤 댄스 동호회’ 깃발까지 광장에 등장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수많은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도 생겼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고, 윤 전 대통령이 체포되기 전까지는 ‘내란성 불면’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 절차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받지 않는다고 하자 ‘광화문 초대장’이 쏟아진다는 밈이 유행했다.

아카이브 ‘깃발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심판 결론이 난 4일까지 4개월간 집회에 나온 깃발들을 기록했다. ‘12·3 비상계엄 아카이브’는 비상계엄 사태에 관한 성명서, 정당의 입장문, 유튜브 콘텐츠부터 ‘밈’까지 저장해뒀다. “흩어져서는 안 될 기록”이기 때문이다. 아카이브에 오롯이 저장된 지난 4개월간의 기록을 통해 ‘비상계엄부터 탄핵까지’ 톺아봤다.

‘깃발들’ 홈페이지에는 4일 기준 630개의 깃발이 저장돼 있다. 최중원씨(38)와 웹 개발자 조현석씨가 협업해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소란이 정리되면 깃발을 더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깃발들이 웹에서 펄럭이는 아카이빙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카이빙된 깃발들에는 많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민주주의의 적들을 남김없이 처단해 역사의 본보기로” “내란수괴는 사형이 디폴트(미리 정해진 값)” “윤석열은 감옥으로, 시민들은 가정으로”와 같은 깃발들이 예시다. ‘야근 좀 그만하고 싶은 직장인 연합’에는 삶의 애환이 담겼고 ‘취준 때려치고 나온 취준생 모임’은 “제발 취업 좀 하자. 안 그래도 할 거 많은데 뉴스라도 덜 보게 해달라고”라고 깃발에 적었다. 유머도 빠지지 않았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는 ‘전국 마법봉 연합’의 깃발, “이거 ‘방풍 촛불’이야”라는 깃발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에게 큰 웃음을줬다.

비상계엄 정국의 고통을 축약한 문구들도 자주 보였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 새벽마다 불안해졌다는 호소, 지난 1월 이후 시민들이 윤 당시 대통령이 체포되길 바라던 시기에는 ‘내란성 불면증 피해자 연대’ ‘새벽형 불안성 새로 고침 단체’ 깃발이 나왔다. 사태가 점점 장기화하자 ‘깃대 부러지고 깃발 찢어져서 둘 다 새로 맞춘 사람’ 깃발이 등장했다. 탄핵 심판 선고가 4월까지 미뤄지자 ‘봄이여 오라’ 등 다양한 깃발이 나왔다.

연대를 이야기하는 깃발도 많았다. ‘퀴어·전장연·민주노총과 연대하는 동덕여대 졸업생’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마세요. 우리의 친구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나다!’ 깃발 등이 있었다. 최씨는 “‘윤석열 탄핵’이라는 큰 의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깃발들로 소수자·해외 연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점도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김태현씨(56)를 총괄로 여러 구성원이 운영하는 ‘12.03 비상계엄 아카이브’는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 각종 성명서·선언문, 국회 상임위 기록, 정보공개청구로 얻어낸 행정 기록, 정당별 기록과 진영별 유튜브까지 한곳에 모아뒀다. 김씨는 “단순히 기록을 모으는 것에서 넘어서서 어떤 주제로, 어떻게 수집해야 할지 전략을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아카이브를 만드는데는 ‘시민 각자의 기록’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지난해 12월 3일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는 시민들을 촬영한 영상 등 국회 앞에 몰려든 시민들은 저마다의 기록을 남겼다. 김씨는 “과거에는 ‘기록’을 하는 별도의 전문가가 아카이빙을 했지만 온 국민이 당사자인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 기록을 생산해서 저장하고 있다”며 “역사적 사건이 될 기록을 시민 주도로 남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와 김씨는 ‘윤석열 파면’은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헌재의 선고 지연으로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 등 사회적 비용이 컸던 것 같다”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행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 “시간이 걸렸지만 당연한 결과”라며 “이제 기록·아카이브를 가지고 우리 역사가 어떻게 더 진보할 것인지 고민할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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