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칸에 관을 싣고 달리는 트랙터 뒤를 아이들이 쫓는다. 아이들은 곧 짐칸에서 내린 관을 구덩이에 묻는데, 맨손으로 흙을 퍼 담아 다지는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도 보인다.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의 작품 ‘텔레마치 사다트’ 속 한 장면이다. 사다트는 1981년 10월 열병식에서 암살당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을 뜻한다. 샤키는 이집트 한 시골 마을에서 사다트가 숨진 열병식과 그의 장례식을 트랙터와 트럭 등으로 패러디했는데, 군중으로 동참한 베두인 아이들의 반응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사다트의 암살은 이집트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지만, 사건을 겪지 않았던 아이들에게는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있던 일을 다루되 정치적·사회적 해석을 덜어낸 새 관점에서 보려는 게 샤키의 의도다.

서울 종로구 바라캇컨템포러리는 지난달 28일부터 샤키의 2000년대 초기 작품 5점을 ‘와엘 샤키 :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고 있다. 텔레마치는 1970년대 서독의 TV 버라이어티 쇼 이름으로 인기를 끌어 여러 나라에 수출됐다. 샤키는 1971년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로 메카로 이주했고 거기서 <텔레마치>를 보며 자랐다. 샤키는 두 마을이 나와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여러 시합을 벌이는 프로그램 구성에서 ‘다른 문화 간의 충돌과 교류’라는 영감을 얻어 2007~2009년 텔레마치 연작을 만들었다. 나일강 삼각주 한 시골 마을에 헤비메탈 밴드를 초청하고는 메탈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마을 사람들, 호응 없는 관객 속에서 꿋꿋이 공연을 이어가는밴드를 담은 영상 ‘텔레마치 교외’는 문화의 충돌을 잘 보여준다.
전시된 다른 작품에도 샤키의 생애가 녹아있다. ‘동굴(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대형 식료품 마트에 샤키가 검은 외투를 걸치고 출연해 코란의 알 카흐프(동굴의 장)를 암송하는 영상이다. 샤키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같은 형식의 작품을 촬영했는데, 무슬림이자 해외 이민자인 자신의 처지, 영상 중간중간 배경으로 잡히는 백인들과 아랍계 유색인들을 통해 세계화가 각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부조화를 보여준다.

‘알아크사 공원’은 예루살렘의 성지인 바위의 돔이 놀이기구처럼 들썩이며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회전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알아크사(성전산)에 위치한 바위의 돔은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지만 유대인 극단주의자들은 이곳을 헐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유적이 각 종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정치적 상징물로 쓰이고 있는 현상을 흔들리는 바위의 돔으로 표현했다.
샤키는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집트관의 대표 작가로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구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했는데, 한국의 판소리를 재해석한 작품 ‘러브스토리’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샤키는 초기에 사용했던 영상 외에 최근에는 꼭두각시 인형이나 가면을 쓴 배우의 연극 등 공연 예술로도 표현 양식을 넓히고 있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