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 서울의 시민

2025-03-04

‘시민’이 돌아왔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입성했다.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칼레의 시민’(사진·부분) 얘기다. 1999년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 상설 전시되다가 2016년 갤러리 폐관으로 수장고에 들어갔던 작품이다. 김성원 부관장은 “리움미술관에 ‘칼레의 시민’이 입성하듯 들어왔다”며 “삼성문화재단 60주년을 맞아 조각 중심으로 ‘현대미술 소장품전’을 꾸렸다”고 말했다.

14세기 시민들이다.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칼레를 점령한 영국 왕은 항복의 징표로 시민 대표 6명을 내놓으라 요구한다. 1년 가까이 똘똘 뭉쳐 저항하던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가. 부자가 먼저 손을 들자 시민·법률가가 동참했다. 가진 자가 먼저 희생하는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 이야기다.

실은 당시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다. 시민 대표들이 희생을 자청했다는 기록은 없다. 19세기 민족주의 물결 속에 외세에 맞서 동료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애국적 영웅담으로 부각됐을 뿐이다. 로댕은 이런 영웅담을 거부했다. 죽음이 두려워 발걸음 떼기를 주저하는 시민 대표 6인의 모습을 새겼다.

서울 로댕갤러리에 ‘지옥의 문’과 함께 들어온 ‘시민’은 1996년, 12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주조됐다. 백남준·최재은·이불, 무라카미 다카시, 장 미셸 오토니엘 등 로댕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작가들은 이 작품의 강렬한 이미지를 넘어설 신작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다. 이렇게 서울에서 새 역사를 쓴 ‘시민’의 귀환 소식에, 서울 시민들의 설레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비록 오늘 서울의 광장은 두 쪽 나 있지만.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