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火魔), 수재(水災), 그 이후

2025-03-12

지난 시론에서, 그동안 29년을 해왔기 때문에 새로 다시 치과를 시작하는 것을 매우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삐걱거리는 상황 속에서 저를 반성하였고, 문제에 파묻히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계기를 바로 지금의 ’탄핵정국‘에서 찾을 수 있어서 감사드린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이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치과병원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는 것을 느끼면서 항상 배우고 성장하겠다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래서 하드웨어들도 차근차근 점검하고, 환자응대 시스템도 하나하나 개선해가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이제 본궤도에 올라선 듯 했습니다. 컴플레인도 거의 생기지 않고, 우리 스스로도 이전과는 다른 것을 체감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맘 카페 등의 사이트의 글들도 호의적인 내용이 점점 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선순환으로 돌아선 느낌이었고, 환자(보호자)분들과의 신뢰가 서서히 다시 쌓이고 있음을 느끼는 행복한 하루하루였습니다만...

그러던 어느날 진료실 복도에 길게 달려있는 LED 등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사람이 맞아서 다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그렇진 않아서 그냥 좋게 다시 달아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해당 업체에서 와서 진료 마치자마자 시공을 시작하였고 3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남아서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작업하다가 합선이 되었나보지?”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차단기를 올리려 배전반실로 갔는데 하~얀 연기가 점점 차올라오면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합선이 되면서 잠깐 스파크에 의해서 그런가보다 해서 기다려보니 점점 더 심해지고 위쪽 전선들이 지나가는 천장쪽의 틈새에서 뻘건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차! 하면서 상황을 보니 높고 폐쇄된 공간이라 올라가서 소화기로 천정의 불을 끄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서둘러 119에 화재신고를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아주 많은 소방차량이 도착하였습니다. 번쩍거리는 소방차의 경광등 불빛, 수십 분의 소방대원분들이 2층의 치과로 빠른 속도로 올라오시면서 서로 무전으로 주고 받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들, 소방차에서 긴 호스를 끌고 올라오고 동시에 벽의 소화전을 열고 그곳에서도 호스를 풀어서 전기가 차단되어 비상등만 어슴프레 켜져 있는 깜깜한 치과 안으로 들이닥치는 모습들이 현실이 아니라 영화속 장면이지 현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지휘관격의 소방대원 분께서 화재 발생의 상황에 대해서 아주 짧게 들으신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렌치 등을 이용해 천장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서 불을 확인하고 소방호스로 물을 엄청나게 살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0여분만에 이루어졌고, 곧이어 화재진압 완료 무전을 주고받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화마(火魔)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빠른 진화작업으로 불은 바로 번지지 않게 잡을 수 있었지만 아주 많은 물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이번엔 치과 내부가 수해(水害)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생한 유독가스를 빼려고 영하 10도 이하의 추운 날씨에 모든 창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진료실과 복도에 살포된 물에 발목이 잠길 정도였고,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가스는 그쪽 사무실도 영향을 준 상태였으며, 아래층에 물도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입김이 나는 야외 같은 상황에서 물을 퍼서 버려야했고 물에 젖는 전자제품이 더 이상 젖지 않도록 표면의 물을 닦는 작업을 3시간 이상 해야 했습니다. 발목까지 차서 퍼서 버려야했지요.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엄청난 상황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순간에 얼마 전에 읽었던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책 속 걱정거리 해소법이 떠오르지 않았겠습니까? 지금의 상황은 받아들이고(화재가 났었고, 불을 끄느라 물이 사용되면서 치과가 물에 젖어버린 상황) 인정하면서 현재보다 더 최악의 상황(만일 아무도 없을 때 화재가 났다면, 사람이 다쳤다면, 다른 층에 번졌다면...)을 가정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정말 큰 행운이었고, 나, 화재를 야기한 업체 직원, 건물의 관리실 직원분들, 퇴근했다가 다시 돌아온 직원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서 서로 격려하면서 물을 푸고, 젖은 물건을 닦고, 옮기고 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 치과 복구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젖은 벽체와 장비 등을 3~4일동안 계속 말리고 난 후에 합선을 일으킨 인테리어 업체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복구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약 보름 정도 진료를 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서로 조금씩 손해를 보는 방향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진료를 재개해도 잔여 습기를 머금은 전자제품들의 오작동은 간간히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화마와 수해가 휩쓸고 간 병원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에서 저는 이미 발생한 사건 때문에 사람 사이에서 다툼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 부분이 정말 감사하고 뜻깊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서로 비난하고 책임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고 다툼 없이 함께 해결해 나가려고 했다는 것은 정말 큰 가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간의 이해와 협력이 있었다는 건, 그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우리 직원들과의 관계도 화재 후에 더욱 돈독해지리라 여겨집니다. 화재를 일으킨 업체와는 병원을 닫는 날까지 계속 관계를 유지할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존중은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더욱 강화하면서 화재와 수해가 지나간 병원을 즐겁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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