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3인칭 시점으로 나를 관찰하기

2025-03-12

‘나’에게 집착할수록 우울감 더욱 커져

자신을 멀리서 보는 객관화 시선 중요

자살한 시인 아홉 명과 그렇지 않은 아홉 명의 시를 분석했더니 ‘나’라는 표현이 자살한 시인들의 작품에서 훨씬 더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보다 “내가… 나는… 나를”과 같은 1인칭 단수 대명사의 사용 빈도가 우울증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상담하면서 우울증 환자의 언어 습관을 관찰해보니, 실제로도 그런 경향이 보였다. ‘난 정말 우울해, 이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제일 힘들어!’라며 자기감정으로 파고들고, ‘나는 왜 우울증에 걸렸나?’라며 자신의 마음에서만 원인을 찾으려 했다. 이렇게 ‘나’에게 집착할수록, 우울감은 더 커졌다.

우울증에서 벗어난 환자는 ‘나’라는 1인칭 단수 대명사를 덜 사용했다. 증상이 호전되면 “지금까지 고민했던 문제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져요”라고 말하곤 한다. 가족과 친구, 주변의 사물과 공간,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대상으로 관심의 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었다.

우울증 치료의 목표 중 하나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언어적 전환을 통해 감정의 영향을 배제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킬 수 있다.

“나는 ~ 했다”이라는 1인칭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해서도 “OOO은 ~ 했다”라고 3인칭으로 말해보는 것이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심리학자 이고르 그로스만은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참가자들에게 한 달 동안 일기를 쓰게 했는데, 절반은 “나는 오늘 힘들었다” 같은 1인칭 표현을, 나머지 절반은 “그(그녀)는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다”처럼 3인칭 표현을 사용하도록 했다. 한 달이 지나자 단순히 말투만 달랐을 뿐인데도, 3인칭으로 일기를 쓴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덜 흔들렸고, 도전적인 사건에 심리적으로 더 유연하게 대처했다.

결심을 실천하는 데에도 3인칭 시점을 활용하면 좋다. ‘나는 운동을 할 거야’라고 막연히 다짐하는 것보다, 자신이 운동하는 모습을 CCTV 화면처럼 생생하게 떠올려보면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커진다. 3인칭 시점으로 자기를 바라보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행된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리사 리비 교수 연구팀은 오하이오주의 등록 유권자 14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69명)은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이 투표하는 모습을 상상했고, 다른 그룹(77명)은 3인칭 시점에서 자신이 투표하는 모습을 떠올리도록 했다. 그 결과, 3인칭 시점으로 자기 행동을 심상화한 그룹의 투표 의지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투표율도 더 높았다. 1인칭 시점 그룹의 투표율은 72%였지만, 3인칭 시점 그룹은 90%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제 직접 실험해볼 차례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기보다 “OOO (자신의 이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라고 바꿔서 질문해보자. 마치 친구에게 조언할 때처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마음먹은 일을 실천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일부터 운동할 거야”라고 말만 하지 말고 내일 아침에 기상해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 한강변을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떠올려보자.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면서 실행 가능성이 훨씬 커질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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