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은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가져온 가정통신문이 생각났습니다. 새 학기라 사인할 것들이 많아서 고무장갑을 벗고 후다닥 볼펜을 들었죠. 다 끝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뭐 하고 있었지?’ 순간 멍했지만, 곧 벗어 놓은 고무장갑을 보고 떠올렸습니다. 설거지 중이었다는 걸요. 언제부턴가 말할 때 특정 단어나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니, 이제 조금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이런 건 아닌 모양입니다. ‘영알츠하이머’란 말이 생길 정도입니다. 20~30대 젊은 사람들이 건망증에 시달린다는 얘기죠. 65세 전에 발병하는 ‘조발성 치매’ 역시 최근 10년간 3배 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건망증이 심해지면 치매가 될 수도 있다는데, 건망증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갔습니다. 분당제생병원 산부인과 유정현 과장입니다. 왜 신경과가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냐고요? 기사에서 그 이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건망증이 옵니다. 기억력이 한창 좋은 스무 살에 애를 낳아도 마찬가지예요.
유정현(58) 분당제생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여성이 남성보다 건망증이 심한 건 출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출산 전후 엄청난 ‘호르몬 폭탄’을 맞고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몸과 뇌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서 갑자기 건망증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유 과장은 출산 후 건망증이 심해진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뇌 속에 있는 기억을 넣어두는 서랍장을 정리하고 비운다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유 과장은 42세에 결혼해 45세에 아이를 낳은 ‘노산(老産)의 산 증인’이다. 그가 유튜브 채널 ‘나는 의사다’에 출연하며 임신·출산·육아 등에 대한 여러 정보를 소개하는 코너명을 ‘노노산부인과’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실제로 그는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50대 ‘늙은 양육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건망증 역시 그를 괴롭힌 대표적인 증상이다. 과연 그는 건망증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지난 5일 유 과장을 직접 만났다.
Intro 여자들은 왜 건망증이 잘 생기나
Part 1 출산하면 피할 수 없다, 건망증
Part 2 출산 안 하면, 건망증 없을까
Part 3 뇌 서랍장, 이렇게 정리하고 비우자
🤰출산하면 피할 수 없다, 건망증
임신·출산 이후 여성의 신체와 뇌 기능은 떨어진다. 엄청난 양의 호르몬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 할 일은 늘어나 충분히 자지도, 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깜빡하는 건망증이 심해지는 이유다. 유 과장은 “아무리 멀티태스킹 능력이 좋아도 카오스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신·출산 기간 호르몬 변화가 그렇게 큰가요?
열 달 내내 엄청난 ‘호르몬 폭탄’을 맞아요. 특히 태반이 커지면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이 늘어나는데, 임신 전의 몇백 배 수준이에요. 그런데 아이를 낳는 순간 뚝 떨어지죠. 태반이 없어지니까요. 임신 기간 내내 서서히 오르다가 최고로 올라간 지점에서 뚝 떨어지는 거예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요. 그러니 몸 전체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요. 에스트로겐은 뇌세포의 성장과 활성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라서 이게 줄면 뇌 기능도 떨어지죠. 모유 수유를 하면 다르겠지만, 출산 후 한 달 정도 지나고 생리가 다시 시작되면 이 호르몬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건망증은 계속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