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과 극은 통한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사람들은 뇌 활동 패턴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념적으로 극좌든 극우든 마찬가지였다. 미국 브라운대 인지 및 심리과학과의 오리엘 펠드만홀 교수팀은 28일(현지시간) 미국심리학회(APA) 학술지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JPSP)’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진보·보수 성향의 사람 44명을 뽑은 뒤, 이들에게 2016년 미 대선 때 부통령 후보 토론회 영상을 보여줬다. 민주당의 팀 케인과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가 경찰 개혁과 이민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17분 47초 분량의 영상이었다.
참가자들이 영상을 보는 동안, 연구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뇌를 스캔했고, 몸에 센서를 붙여 피부전도반응(SCR)을 측정했다.
일반 MRI는 장기·조직 등의 단면을 찍지만, fMRI는 뇌 활동 변화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SCR은 외부 자극으로 땀이 늘며 피부의 전기 전도도가 증가하는 걸 말하는데, 이런 변화를 포착하면 특정 환경에서 감정 변화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험 뒤 다시 참가자들의 이념적 극단성을 측정해 실험 전·후 변화가 있는 사람, 데이터 누락·오류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총 41명의 데이터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사람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영상을 볼 때 몸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우선 뇌에서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편도체와 수도관주위회색질(PAG), 사회적 자극을 인식하는 후부상측두구(pSTS) 등의 영역이 활성화됐다. 이런 반응은 특히 영상에서 선동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이 나올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또 중도적인 사람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더 흥분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런 변화가 뇌의 반응을 증폭하는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단순히 무엇을 믿는지뿐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강하게 믿는지, 또 그것에 얼마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가 정치적 인식을 형성한다"고 해석했다.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회적·감정적 동인을 고려해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2023년 대학 캠퍼스와 뉴스에서 "우리 대 그들(us versus them)"이란 수사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당시는 미 대선을 한해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전 대통령이 기소되며, 미 정치권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이를 적대시하는 표현이 이념의 양극단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말발굽 이론(horseshoe theory)'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말발굽 이론은 프랑스 철학자 장-피에르 파예가 주창한 것으로, 둥글게 휜 말발굽(편자)의 양 끝이 서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나치즘(극우)·스탈린주의(극좌) 같은 극단적 이념들이 사실은 서로 닮았다는 이론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 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펠드먼홀 교수(사진)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비슷하다"며 "이런 점을 인정할 때 정치적 분열을 넘어 더 큰 공감대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