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 도입, 시대적 과제다

2025-09-10

지난 7월 금융노조는 창립 65주년을 맞아 ‘주 4.5일제 도입’을 강조했다. 또한 주 4.5일제의 도입과 정년연장, 신규 채용 확대, 노사공동 사회공헌 활동 시행 등을 목표로 교섭을 진행 중에 있으나 합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총파업도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며 분신한 고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이 나라에 있었지만 대한민국 노동자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2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천 904시간으로 OECD 평균인 1천 719시간에 비해 185시간 많았다. 반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요 31개국을 대상으로 워라밸 수준을 뜻하는 시간 주권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의 경우 3번째로 많았고, 가족시간은 31개국 중 20번째로 적었다.

통상 주4.5일제는 주 5일 근무제에서 하루를 반일만 근무하는 형태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평소와 같이 일하고 금요일에는 오전만 근무한 뒤 일찍 퇴근하는 근무제를 의미한다. 주당 근로시간 총량(40시간)은 유지하면서 하루를 절반만 근무하는 유연근무제라고도 말한다.

이는 워라밸을 높이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며 임금 삭감 없이 노사 협의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해서 진행 중이며 1년 예산만 80억원 수준으로 배정되어 있다 한다.

금융노조는 그간 선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금융노조를 향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아 보인다. ‘억대 연봉’으로 통칭하는 금융권 고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을 두고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감정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봐 줘야 한다. 2002년 금융노조가 노사간 합의로 처음 도입한 ‘주5일 근무제’는 후 2004년 법제화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토요 근무가 당연시되던 그 당시에 과연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만약 다시 토요일까지 근무하게 된다면 이 사회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종진 일하는 시민연구소 소장은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건강 개선, 성 평등한 돌봄 실현, 저 출생 문제 완화, 산업재해 감소, 생산성 향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를 보인다고 강조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89~’91년 주 48시간에서 주44시간으로 단축시켰을 때 노동생산성이 이전 9.0%에서 12.6%로 상승했고 일자리도 4.7% 증가했다. 2004년 주 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한 시기에도 10인 이상 제조업 종사자의 1인당 실질 부가가치가 1.5% 향상됐으며 68만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노동시장이 파편화돼 비정규직과 비정형 노동자가 많이 늘어난 상황이어서 제도 적용 대상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있다. 따라서 비정형 노동자도 최대 근무일, 근무 일당 최대 노동시간, 근무일 간 휴게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노동시간 단축 여력이 부족한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 격차 문제에 대한 해법도 필요하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는 금융 노사가 출연해 설립한 금융산업공익재단에서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시간 단축을 지원하는 재정사업을 노사가 함께 추진한다면 시간 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노조는 주 4.5일제 도입의 한 방법으로 현재 오전 9시부터 4시까지인 영업시간을 9시반부터 4시반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아침보다 오후 마감시간 전에 더 고객이 몰릴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불편을 해소하고자 함이다.

이에 대해 이미 금융노사는 코로나19시기 주 4.5일제 실험을 마쳤다. 하루 1시간 영업을 줄였으나 고객 불편은 거의 없었고 노동자의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은 크게 증대됐다. 물론 주 4.5일제를 실행한다고 해서 금융노동자의 업무가 획기적으로 줄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않는다.

금융노동자의 노동은 셔터 내리고 나서부터 시작이라고들 말한다. 고객을 대면하고 행하는 업무가 끝이 아니기에 아직도 야근은 계속되고 있고 각종 업적평가와 실적으로 머리는 늘 개운하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주 4.5일제의 시행은 시대적인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을 OECD 평균이하로 낮추겠다며 주4.5일제 도입 추진을 공약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도 임금 감소 없는 주4.5일제 도입 추진을 공약한 바 있다.

지난 2월 한국 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61%가 주4.5일제 도입을 찬성할 정도로 여론의 공감대도 상당하다. 응답자 중 60%는 근무 시간이 줄어도 급여 수준은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새 정부 출범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저 출생, 지방소멸, 내수침체 등 복합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 노동시간 단축은 존엄한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노동자의 건강, 일·생활의 균형 유지, 돌봄과 병행을 통한 성 평등 촉진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시간 주권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당장 생산성이 줄 것을 우려하지만 한국 사회의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의 단축은 더욱 필요하고 주 4.5일제는 하루빨리 시행되어야 한다. 여유로운 삶 속에서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어진다. 한국 사회의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노동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되길 기대한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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