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우리 미술문화 정체성 구축에 방점 ‘성격있는 비엔날레’로” [세계초대석]

2025-08-19

광주비엔날레는 ‘미술담론의 생산기지’

30년 역사 바탕 전문화·체계화 되어야

현대미술 세계흐름 동참하면서 차별화

‘광주 정신’·‘예향’ 특색 예술적 승화 필요

5·18 진정성 훼손 않고 웃음·여유 가미

역사적 무게 덜어내고 그날을 기억해야

국제 큐레이터 코스·도슨트 등 연중 운영

‘이웃과 함께하는 비엔날레’로 조율할 것

예산 100억원으로 줄어 민간 후원 절실

“그동안 국제무대 진입과 위상 정립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30년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 미술문화의 정체성 구축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현대미술의 세계 흐름에 적극 동참하면서 우리 비엔날레 문화로 차별화 되는, ‘성격있는 비엔날레’로 우뚝 서야 할 때입니다.”

윤범모(74) 광주비엔날레 신임 대표이사는 “3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돼, 이를 이끌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는 말부터 꺼내든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립 당시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던 그는 지난달 17일 이사회 승인에 이어 18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자마자 팔을 걷어부치고 업무에 착수했다.

미술평론가, 전시 기획자, 미술사가, 예술행정가 등 40여 년 종횡무진 미술계 원로로,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고 있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임기 1년 10개월을 남겨두고 2023년 4월 중도 사퇴해야 했던 그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광주비엔날레 수장으로 ‘귀환’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초입에 있는 광주비엔날레 서울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정체성 구축, 가장 어려운 일인듯한데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광주비엔날레가 제 모습을 되돌아봐야 할 시기다. 세계 어디에도 ‘도시’에 ‘정신’을 붙이는 곳은 없다. ‘광주 정신’. 광주만이 가능하고 어울린다. 광주비엔날레는 ‘미술담론의 생산기지’로서 보다 전문화, 체계화 되어야 한다. ‘광주 정신’이란 독특한 용어와 ‘예향’(藝鄕)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지닌 광주의 민주·인권·평화 정신을 문화예술로 품기 위해 1995년 첫발을 내디뎠다. 동시대 시각예술 플랫폼으로서 현대미술의 담론을 생산하고, 광주정신을 지구촌 공동체에 널리 전파해왔다. 첫해 163만명이 다녀가면서 현대미술의 씨앗을 틔운 뒤 시각문화 현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면서 어느덧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예술은 사람과 도시를 치유하고 역사를 반추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광주비엔날레는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주, 난민, 분단,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이슈를 시각예술로 환기시키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지금, 지구촌이 꽤나 힘들다. 문화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을 빌려 모두가 연대해 극복했으면 한다.”

― 광주 시민단체들도 5·18이 주는 역사적 무게를 덜어달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적어도 예술분야에선.

“무겁고 아픈 광주민주화운동의 옷을 벗고 웃음과 여유를 가미하지만 결코 5·18의 정신과 진정성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지나간 상처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오히려 그 묵직함에 짓눌리기보다는 예술성을 살려 무게를 덜어내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이제는 통곡과 한숨을 한쪽에 치워 놓고도 그날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미 익숙한 아픔을 마주하는 관객들의 부담을 줄여 작품 속 몰입을 돕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의도가 오히려 흥행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설령 5·18을 직접 다룬 작품일지라도 한 번에 전부 담아내려 과욕 부리지 않는다. 선동이나 비장감 등으로 관객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5·18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인지를 일깨우면서, 앞으로 더 많은 관련 작품들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 그동안 비엔날레는 ‘소수 전문가의 잔치’라거나 ‘너무 어렵다’는 식의 지적을 받아왔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균형과 조화를 어떻게 이룰지도 숙제인데.

“비엔날레는 미술박물관처럼 역사를 정리하기보다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는 자리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수용해야 하는 전문성의 비중은 몹시 중요하다. 하지만 ‘전문가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아우르면서 ‘이웃과 함께하는 광주비엔날레’가 되도록 조율하겠다. 전시 외에도 국제 큐레이터 코스, 도슨트 프로그램, 작가 탐방 프로그램 등을 연중 운영해 교육·교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국제 큐레이터 코스에는 47개국 198명이 지원했다. 도슨트 공모 경쟁률도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9월부터는 광주의 장소와 역사를 예술적으로 해석하는 ‘다크투어리즘’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시작한다.”

― 지역 작가와의 동반 성장도 주요 과제로 꼽는다.

“지역 작가들이 단지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엔날레의 언어와 구조를 함께 만드는 동반자가 되도록 돕고 나설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역 예술인들과 간담회, 워크숍 등을 열고 비엔날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 150억 원이던 예산이 100억 원으로 줄었다. 전국 단위 후원회 조직 등 재정 기반 확충 방안이 있는가.

“좋은 기획이 있어도 실행할 예산과 인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예술기관장은 백조와 같다.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지만, 물 밑에선 끊임없이 발을 저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시절 연간 700억 원의 예산과 대규모 조직을 이끌었다. 반면 지금은 정규직 20여 명 포함 총 50여 명 규모에 예산은 100억 원 수준이다. 민간 협력과 후원이 절실하다. 오피니언 리더를 포함한 기업인들, 애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다. 아카이브도 보강하겠다. 30년이 지났는데, 관련 자료들이 제대로 축적되어 있지 않다. 데이터베이스화 기초작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온라인 공개해 누구나 검색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기증받은 작품들은 아카이브와 함께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을 때도 상설 전시 하겠다.”

― 숙원이던 신규 전시관 건립은 진행되고 있나.

“연면적 3만2276㎡, 지상 3층 규모로, 기존 전시관이 있는 중외공원과 국립광주박물관 사이에 지어질 것이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내년 착공할 예정이다.

― 30일 개막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상황은 어떤가

“광주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하던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올해부터 재단 주최 행사로 바뀌어 곧 열린다. 무난하게 치러내는 게 당장의 목표다. ‘너라는 세계: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를 주제로 30일부터 65일간 진행된다. 디자인비엔날레는 새 체제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디자인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까.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디자인이 지닌 선한 영향력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포용디자인은 더 이상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배려의 영역이 아니다. 모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상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 전체의 활력으로, 산업의 새로운 동력으로, 국가의 미래 비전으로 확장될 수 있는 촉매제로서 포용디자인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품은 뜻을 말하는가.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다. 나라는 개별의 세계와 너라는 타자의 세계. 그런데 우리 모두는 동시에 ‘나’이면서 누군가의 ‘너’가 된다. ‘나’는 ‘너’를 만나며 자신의 경계를 확장해가고, ‘너’는 ‘나’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인식한다. 서로 다른 너와 나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 그 세계를 디자인이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어떨까. 포용디자인은 이같은 꿈에서 출발해 형태와 기능을 넘어 사회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 그리고 깊은 감성까지 아우르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광주는 포용디자인을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도시다. 인간 존엄성의 숨결이 깃들고, 민주주의와 포용의 가치를 온몸으로 실현해온 광주는 무등산의 이름처럼 높음을 자랑하지 않고 낮음을 차별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자연스레 수용하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야말로 포용디자인의 화두를 던지기에 알맞는 무대다.”

― 덧붙일 말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은 뭔가.

“이곳에서 예술가와 시민이 만나고,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는다. 차별과 소외의 벽을 허물고, 갈등과 간격의 골을 메우며, 포용과 포옹의 언어로, 공존과 배려의 몸짓으로 예술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준다. 광주비엔날레는 이같은 힘을 누리는 장이다. 임기 3년 동안 지난 30년 위에 새로운 30년의 초석 하나라도 놓고 가고 싶다. 광주의 정신과 예술을 잘 이끌어내 언젠가 광주 명예시민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하.”

윤범모 대표이사는…

●1951년 천안 ●중동고 ●동국대 미술학과, 동 대학원 사학과 석사, 미술사학과 박사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등단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예술의전당 미술부장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창립회장 ●가천대 회화과 교수 ●광주비엔날레 창립 집행위원, 특별전 전시감독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예술총감독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국립현대미술관장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대통령, 교육부장관 표창

대담 이강은 문화제육부장, 정리 김신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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