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빠르게 친구를 잃고 있다

2025-04-09

엿새 전 창설 76주년을 맞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교장관회의에서 화려한 생일잔치는 없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나토의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 기준을 현행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5%로 올릴 것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회담장은 술렁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GDP 5%’를 언급했지만 나토 회원국은 이를 협상 카드로 보면서 3~3.5%를 예상했다. 그런데 이런 요구가 현실화된 것이다. ‘GDP 5%’는 미국도 감당 못 하는 수치(현재 3.38%)다.

관세·국방비 압박당하는 동맹

일단 미국 달래기 나서지만

대미 신뢰는 점점 소진될 것

국방비 증액 요구는 유럽 동맹국엔 이틀 전 상호 관세 20% 부과에 이은 연타석 펀치였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23개국은 나토 회원국이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미국과 유럽이 무역전쟁을 한다면 우리의 적들이 이를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의 적인 러시아에는 제재로 무역 거래가 없다는 이유로 상호 관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았다.

나토의 인도·태평양 4개국(IP4)과의 협력 강화 방침에 따라 회담장 한 편에 자리한 한국과 일본 외교장관의 입맛이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나라는 EU보다 더 높은 25%와 24%의 관세 폭탄(1% 차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을 맞았다. 함께 자리 한 호주는 더 황당한 처지였다. 대미 무역수지 적자국인데도 상호 관세 10%를 맞아서다. 트럼프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호주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따로 만나 대만을 향해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국 견제와 3국 경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회담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한·일은 트럼프발 상호 관세와 국방비·방위비 증액 폭탄에 그로기 일보 직전이기 때문이다.

취임 석 달도 채 안 돼 캐나다와 멕시코 등 북중미, 유럽, 인도·태평양 등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3대 동맹 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느닷없이 “적보다 더 나쁜” 동맹이 됐다. 그리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말대로 ‘국난(國難)’을 만난 동맹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먼저 캐나다와 EU처럼 맞대응하거나 맞대응을 저울질하는 ‘보복(retaliation)’ 카드다. 하지만 보복은 트럼프가 공언대로 보복을 불러와 단기적으로 자국 기업과 국민에게,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무역 질서에 추가로 타격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대다수 동맹국이 선택하고 있는 ‘회유(appeasement)’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일 거의 70개국이 미국과의 협상을 희망해왔다고 밝혔다. 회유의 핵심은 무역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비관세 장벽을 낮추고,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안보 지원을 받는 한국과 일본의 경우 다른 선택지가 없는 형편이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의 미국 투자 확대 발표의 경우처럼, 트럼프는 자신의 전리품이라고 미국 국민에게 선언할 동맹국의 선물 보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장 다각화(diversification)’다. 관세 장벽으로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워진 동맹국들이 미국을 배제한 채 자유무역질서를 선호하는 국가와의 경제 블록을 강화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주위에서 더 많은 국가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시장 의존도를 낮추거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CPTPP는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베트남 등 아·태 지역 11개국이 결성했는데, 2019년 기준 전 세계 무역 규모의 15.2%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협의체다.

이보다 좀 더 민감한 움직임은 얼마 전 미국 의회에서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던 한·중·일 통상 협력 강화다. 민주당 소속 한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관세는 미국의 두 위대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중국의 품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다수 미국의 동맹국들은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단기적으론 회유, 중장기적으론 시장 다각화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런 선택에 내몰린 동맹국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는 점점 소진될 것이다. 워싱턴은 지금 빠른 속도로 친구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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