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축 우라늄 제조 시설로 추정
무턱대고 대화만 앞세워선 곤란
美와 비핵화 틀 재조율 시작해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이 평안북도 영변에 새로운 핵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이사회에 “북한이 영변에 평양 인근 강선의 핵 시설과 비슷한 특징을 지닌 시설을 새로 짓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 북한이 핵 능력 증강 계획을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었다는 방증이어서 매우 우려스럽다.
북한은 지난해 9월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올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연구소’를 시찰했다고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시설 내부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전술핵 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이미 저위력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겠다고 선언하고, 미사일도 다량화해 핵탄두 물량 확보가 필수적이란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핵 시설은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 공장일 가능성이 높다. 강선에 있는 핵 시설도 HEU를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장이 정상 가동에 들어간다면 북의 핵무기 생산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새 정부의 북핵 해법 역시 쉽지 않은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임 윤석열정부에서 남북관계가 파탄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측의 대북전단 살포,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와 이에 반발한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 남북통신선 및 도로 전면 차단 등 일련의 과정에 기인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남북 간 긴장 고조의 원인으로 지목된 대북전단 살포부터 중단시키기로 했다. 어제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도 1년 만에 중지했다. 문제는 이러한 대북 유화책에도 북한이 도발을 지속해 왔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국정원장 후보자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지명했다. 또 신임 통일부 장관에 과거 노무현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었던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재기용을 유력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을 전면 배치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현실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대화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 견지가 우선이다. 모호하고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북핵 문제 틀을 종합적으로 재조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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