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인터뷰
식품기업들의 잇단 가격 인상에 “매우 유감”
할당관세, 세제지원 등 경영난 해소 위한 정부 지원 있어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묻지 않을 수 없어
박 차관 “사전에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설득 과정 있었어야”

최근 농심, CJ제일제당 등 주요 식품기업이 잇따라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물가 컨트롤타워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박범수 차관은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불가피한 요인은 인정하면서도 사전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인상이 이뤄졌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박 차관은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정부는 할당관세 적용, 구입비용 지원,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들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며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코코아 가공품 등 6개 품목을 추가로 할당관세 적용 대상에 포함해 총 20종의 식품 원료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가격 인상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지원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인상이라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대비 2.9% 상승해 1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외식 물가도 3.0% 올랐다. 연초부터 스타벅스와 할리스를 시작으로 SPC 파리바게뜨, 롯데웰푸드, 빙그레 등이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농식품부는 연이어 식품기업들을 만나 물가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송미령 장관과 박범수 차관은 지난달 식품업계 및 외식업계 관계자들과 잇따라 면담을 진행하며 가격 인상 억제를 당부했다.
박 차관은 “일방적인 가격 인상은 위축된 소비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고, 결국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범수 농식품부 차관과의 일문일답.
―현재 농식품 물가는 어떤 상황인가.
▷2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농축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0.6% 상승했다. 지난해 이맘때 농산물 가격이 높았던 기저효과가 영향을 미쳤다. 무·배추·양배추·당근 가격은 여전히 높은데, 지난해 폭염으로 작황이 부진했던 영향이 크다. 반면 축산물 공급은 원활해 전월보다 1.4% 하락했으나, 전년 대비로는 3.8% 올랐다.
―가공식품과 외식물가도 많이 올랐다.
▷그렇다. 가공식품 가격이 2.9%, 외식 물가가 3.0% 상승했다. 정부는 작년부터 경기 침체를 고려해 식품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고, 할당관세 지원을 통해 가격 상승을 억제해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 시장 불안, 원자재 가격 상승, 원화 가치 하락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영업 수지가 악화됐고,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식품기업, 외식업계 관계자들과 만났는데 어떤 얘기가 오갔는가.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경영난을 호소했다. 특히 커피·코코아는 국제 가격은 많이 올랐다. 또한 팜유, 올리브유 이런 국제 곡물을 사용하는 업체들도 환율 상승으로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기업들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정부는 원재료 할당관세를 적극 적용하고 있으며, 구입비용 지원과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그러면 식품 기업들도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고 그래서 가격을 올려야 되는 불가피성에 대해 우리도 분명히 인식을 하고 인정을 한다. 다만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소통과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보나.
▷최근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신라면의 경우, 재작년에 한시적으로 가격을 낮췄던 것을 원래 수준으로 복원하는 것다. 또한 지난해 라면 수출 호조로 할인 판매를 지속해왔다. 이제 영업력이 떨어져 회복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소비자들한테 충분히 설명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기업들이 충분한 설득 과정 없이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문제인가.
▷그렇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설득 없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소비 심리가 더욱 위축되고, 결국 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다시 가격 인상 압박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정부 차원의 후속조치가 있나.
▷정부가 가격 인상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지원책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할 것이다. 현재 할당관세 지원이 기업의 이익으로만 귀결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실제 비용 절감 효과를 분석할 계획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에 정부의 영향력이 약해진 것이 기업들의 가격 인상에 영향을 줬나.
▷그런 해석은 맞지 않다. 현장 상황을 보면 정부 정책 기조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기업들이 최근 가격을 올린 것은 장기간 인상을 억제해온 부담이 누적된 데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겹쳤기 때문이다. 정부의 영향력이 약화돼서 가격이 오른 것은 아니다.
―트럼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부터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한국은 미국산 농산물 5위 수입국이므로 우리나라에만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은 낮다. 만약 모든 국가에 일괄적으로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다만 원래 우리 농산물 가격이 미국산보다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 농산물에만 관세가 부과된다면 대미 수출 물량이 줄어든 만큼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K-푸드의 대미 수출 중 농산물 관세 부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김치인가.
▷김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미국 현지에서도 한국식 김치를 만드는 곳이 많지만 한국산 김치를 선호하는 소비층이 확고하다. 국내산 농산물로 만든 김치를 먹고 싶어서 사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한국산 김치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