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과 다음 날 또 산재…'안전 약속' 무색
'전시성' 안전대책 도마 위…정부 감독도 '백약이 무효'
고질적 '위험의 외주화'…처벌 넘어 '성공사례' 확산해야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잇단 사망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가 포스코그룹의 대국민 사과 광고를 게재한 당일 또다시 사망사고를 내면서 기업의 자정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사고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질타 뒤, 전 사업장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 대책을 발표한 직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포스코이앤씨 전시성 안전 계획에 치중한 경영 전반의 관리 시스템 부실에 따른 결과라는 날 선 비판이 집중된다.
◆ 대국민 사과 다음 날 또 산재…'안전 약속' 무색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날 오후 1시 34분쯤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30대 남성 근로자 A씨가 감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이는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고속도로 공사 현장 사망사고로 고개를 숙인 지 엿새 만이며, 포스코그룹이 주요 일간지 1면에 대국민 사과 광고를 낸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사고다.
앞서 지난달 28일 함양-울산 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경사면 보강 작업 중이던 근로자가 천공기에 끼여 사망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강하게 문책했다.
이에 포스코그룹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국내 모든 건설 현장의 작업을 무기한 중단하는 한편, 이달 1일부터 그룹 중심의 안전관리체계 전환과 안전 예산 대폭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안전관리 혁신계획'을 발표했다. 계획과 함께 그룹은 장인화 회장 직속의 '그룹안전특별진단 TF'를 즉시 출범시키겠다고 했으나, 출범 나흘 만에 이 같은 중대재해가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후로 꾸준히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올해 들어 사고 빈도는 더욱 잦아졌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50대 하청업체 직원이 추락해 숨졌고, 4월에는 경기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에서 붕괴 사고로 직원 1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에 이어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연이어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신안산선 붕괴 사고 당시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함께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지난 4일 게재된 대국민 사과문에서도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안전 시스템을 원점에서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감전 사고가 발생한 현장은 전사적인 안전 점검을 마친 뒤 "안전하다"는 자체 판단 아래 작업을 재개한 첫날이었다는 점에서 포스코그룹의 안전 의식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 '전시성' 안전대책 도마 위…정부 감독도 '백약이 무효'
가장 먼저 포스코이앤씨의 안전 대책이 '전시성'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례로 그룹 안전특별진단TF는 출범 당시부터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포스코노동조합은 "사고 관련 안전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회사 측이 아무런 답변이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TF 구성을 발표했다"고 반발했다. 노조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장 당사자인 조합원이 배제된 대책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성호 포스코노조 위원장은 "그동안 말로만 노동자를 위한 안전대책이라며 많은 예산을 들여 여러 활동을 했지만 사실상 보여주기에 불과했다"며 "문서와 형식에 치우쳤을 뿐 안전사고는 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포스코그룹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안전'은 최우선 가치로 명시돼 있고 각종 안전보건 성과지표(KPI)가 관리되고 있다. 체계적인 안전보건 경영시스템을 운영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당국의 현행 감독 역시 이번 사고로 사실상 무용했음이 드러났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는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전국 36개 현장에 대대적인 특별감독을 실시해 70여 건의 법 위반 사실을 적발하고 약 2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럼에도 두 달여 만에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정부 감독이 단발성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포스코 경영진은 2021년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도 "무재해 사업장을 만들겠다"며 안전 투자를 약속했지만, 최고경영자의 약속은 반복적으로 공수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급조된 TF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그룹의 자정 능력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고질적 '위험의 외주화'…처벌 넘어 '성공사례' 확산해야
포스코이앤씨가 가진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지목되는 원인은 건설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하도급업체가 다시 팀·반장 단위로 불법 재하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각 단계마다 관리비와 이윤 명목으로 공사비가 삭감된다. '똥떼기'라는 현장 용어가 있을 정도로, 하위 단계로 갈수록 실제 공사에 투입될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보고서는 이러한 과도한 공사비 삭감이 결국 무리한 원가 절감으로 이어져 부실시공과 품질 저하를 유발하고, 이는 곧바로 안전사고 위험 증가로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최하위 작업자는 삭감된 비용 내에서 공사를 마치기 위해 안전 조치를 생략하고 무리한 공기를 맞추려다 사고에 노출되는 구조적 덫에 갇히게 된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발생한 8건의 사망사고 피해자 대부분이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이번 감전 사고 피해자 역시 하청업체 소속 외국인 노동자였다. '위험의 외주화'가 하청업체 직원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고 유형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사고들은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안전 수칙만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던 '재래형(후진국형) 사고'가 대부분이다. 유형별로 분석하면 깔림 3건, 추락 3건, 끼임 1건, 감전 1건으로, 모두 건설 현장의 전형적인 위험 요인이다.
이처럼 고전적인 유형의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은 최첨단 기술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안전모 착용, 안전난간 설치, 위험 작업 전 전원 차단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현장에서 조직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이는 한국 건설업계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 SM그룹 건설부문은 7년 연속 중대재해 '제로'를 달성했으며, 롯데건설은 베트남 대형 프로젝트에서 '무재해 1000만 시간'을 달성해 베트남 정부로부터 안전우수현장상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선 현장의 쇄신과 함께 '당근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건설현장은 타 산업보다 위험성이 크므로 엄격한 현장 관리, 철저한 안전 교육, 2인 1조 작업 등 원칙 준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처벌 위주의 대책 만으로는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은 질책성 정책 뒤에도 발생한 잇따른 사고로 증명됐다"며 "이는 건설업계의 신뢰성과 국가경쟁력을 실추시킬 수 있으므로, 우수 사례를 적극 공표해 산업의 초석으로 삼는 등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