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들 때문에 삶이 바뀐 엘리트 워킹맘 "장애인이 '오래 사랑받을 사람' 되기를"

2024-09-22

엘리트를 지향하며 ‘대치동 키드’로 자란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 국회 출입기자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이 결혼 3년 만에 얻은 쌍둥이 아들의 발달장애 판정 후 180도 뒤집혔다.

기자 출신 ‘거북맘’(발달장애아 엄마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 류승연(47) 작가와 자폐성 지적장애 2급 아들의 실화 영화 ‘그녀에게’(11일 개봉) 얘기다.

“장애인이란 존재가 내 삶에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던 그가 장애인에 대해 “오래 사랑받을 사람(長愛人)”이라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 간의 세월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류 작가가 아들의 출산부터 초등 2년까지 담아 2018년 펴낸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푸른숲)이 원작으로, 이를 읽은 이상철 감독의 영화화 제안에 그가 직접 영화 각색까지 참여했다.

개봉 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좋았다” “내 얘기 같아서 눈물이 났다.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힘든 것보다 세상의 눈이 더 냉정하고 무섭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등 포털사이트‧예매앱 호평이 잇따른다. 부산 국제영화제, 서울 독립영화제, 말레이시아 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됐다.

"'장애도' 고립된 고통, 오래 기쁨 느끼는 삶으로"

이 영화로 KBS ‘아침마당’(10일 방영)에 출연한 그는 “아들이 장애 확진을 받은 5살부터 3년 간이 지옥이었다. 내 삶은 저당 잡혔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자식과 자신 둘 뿐인 ‘장애도(장애라는 섬)’에 고립된 듯한 고통 속에 장애가 있는 자식과 함께 세상을 등진 부모들의 운명이 남일 같지 않던 나날도 있었다. “그런데 아들과 함께하는 삶은 작은 손짓, 성장 하나에 평생 기쁨을 느끼며 사는 삶이더군요.”

개봉 전 서울 신당동 영화홍보사 사무실에서 류 작가를 만났다. 키가 훌쩍 자란 중3 아들을 씻기고 밥 먹이고 옷 입혀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다는 그는 “원작 에세이를 썼던 8년 전에 비해 장애에 대한 사회 제도와 시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금 영화로 나오는 데 위화감이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고 말했다.

-영화엔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나.

“팩트가 어긋나면 상연의 삶과 인물이 이해 안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 단계까지 감독‧PD와 격렬히 토론했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병원 신이 제일 눈물 났다. 탈장 수술하고 마취에 잠든 아들 손을 잡고 상연이 ‘깨어나지 않아도 돼. 더는 이런 세상에서 살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발달장애아 엄마의 삶의 무게, 감정이 응축된 말이다.”

-쌍둥이 중 비장애인 딸의 ‘차라리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대사도 있다.

“제 딸이 초등 1년 때 했던 말이다. 그 때는 ‘너까지 그러면 엄마 못 살아!’라고 소리쳤는데, 지금은 솔직히 표현해준 딸이 고맙다. 장애아의 비장애 형제‧자매로부터 ‘우리 부모도 당신처럼 장애 형제·자매 돌보느라 비장애인인 내게는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메일을 받고서 정신 차렸다. 아들에게만 향했던 시간, 관심, 사랑, 돈을 딸과 남편, 제 자신에게 골고루 나누게 된 계기였다.”

-장애 판정 초기엔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자식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한 엄마의 몸부림이고 정신 승리였다. 지금 아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다. 타인과 어울려 살 줄 아는 발달장애 성인으로 잘 자라는 것.”

오윤아·우영우 장애 편견 덜었지만…치솟는 혐오

영화에는 그가 부당한 장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장애아 부모들과 연대하는 모습도 나온다. 아들의 초등 시절을 그린 ‘그녀에게’의 속편 같은 현실에서 그는 또 다른 과제들과 싸우고 있다.

그는 "발달장애 자녀를 공개한 배우 오윤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발달장애‧자폐에 대한 편견이 많이 희석됐다"면서도 "교권 침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발달장애인 부모를 괴물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같은 영화가 의미가 있다"며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쉽게 혐오를 드러낼 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능 중심 교육 시스템, 특수교육에도 영향"

그의 아들은 초등 통합교육을 거쳐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폐쇄적 삶의 여파로 퇴행하는 아들을 보며 류 작가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사각지대도 느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학교를 못 가니 친구도 만날 수 없죠. 한글을 모르는 최중증 발달장애아는 완전히 고립된 세계에 갇히게 되더군요.”

그는 “특수교육도 성적 중심 분위기가 있어서 교육을 못 따라가는 학생을 지원하고 이끌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교사 개개인에 떠넘긴 상태”라고 비판했다.

곧 나올 새 에세이집 『아들이 사는 세계』(푸른숲)에는 아들의 청소년기 삶을 토대로 교육 시스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미움 받을 용기를 냈죠. 침묵하면 현실이 결코 아름다워지지 않더군요. 장애아와 가족이 이해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영화 ‘그녀에게’가 작은 씨앗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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