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래 직불금 ‘농업인 퇴직연금 제도’

2025-01-23

을사년(乙巳年)이 시작된 지 한달이 다 돼간다. 을사늑약이 있던 120년 전 을사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많은 문제에 당면해 있지만 작금의 가장 큰 현안은 ‘저출산’일 것이다. 2006년 유엔(UN·국제연합) 인구 포럼에서 한국은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번째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있었다.

우리나라 출생자수는 2016년을 끝으로 40만명대가 무너지고 9년 연속 감소했다가 지난해 24만2334명으로 2023년도 대비 3.1% 증가했다. 9년간 계속 하락하다 소폭 오른 데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하락률은 멈췄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교육비, 집값, 일·가정의 양립 등 행복에 가깝지 않은 당장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원인일 것이다.

정부가 2006년부터 18년간 저출산 대책으로 38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국가 연구·개발(R&D) 보고서의 종합평가 결과를 보면 ‘정부가 수립한 정책 목표를 90% 이상 달성했음에도 국민의 인식 변화와 출산율은 여전히 낮다’고 분석했으며, 지금도 그러한 정책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이 있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목표를 90% 이상 달성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애를 낳으면 1억원씩 준다던 예전 모 대통령 후보의 개그 같던 공약처럼, 진짜 1억원을 지급하거나 월 50만원씩 17년간 양육비를 지원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말도 안되는 포퓰리즘이라 하겠지만 2023년 저출산 예산은 약 48조원, 신생아는 약 23만명으로 1인당 2억원을 나눠줘도 남는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 지금 세대에게 1억원을 준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듯, 농업인구 감소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멀리 보면 감소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고 대기업의 농업투자에 폐쇄적인 농업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맞거나 틀리거나 다르거나를 떠나서 혹시 현재 농민 육성 정책이 위 사례처럼 저출산 정책 같은 부분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결국 돈이 있어야 살아간다. 소득은 현재를 위한 소득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소득으로 나눌 수 있다. 농민들에게는 보장된 월급도, 퇴직금도, 자녀들 대학까지 학자금 전액을 책임져주는 대기업 수준의 복지도 없다. 생산 소득을 월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불규칙하고, 굳이 따지자면 보너스 같은 직불금이라도 받으려고 농지를 쪼개 소농(小農)만 늘어났다고 비판도 듣는다.

65세가 넘어도 현금 10억∼20억원쯤 예치해놓은 것 같은 든든한 평생 연금도 없으며, 국민연금도 불안하고 부족하다. 물론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농민들도 많지만, 농업이라는 직업군의 환경은 현재도 미래도 대체로 썩 안정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국가가 모두 책임져줄 수도 없다.

농민도 미래와 노후를 위한 소득 정책이 필요하다. 일반 기업들은 퇴직연금제도를 활용한다. 내 돈 내고 내가 받는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꽤 든든하다.

모든 농산업의 기초는 농산물 생산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작물 재배업을 중심으로 ‘농업인 퇴직연금’ 형태의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5조원까지 늘리겠다는 직불금의 일부를 ‘미래 직불금’으로 활용해서 미래 소득 안전망도 구축한다면 농업이라는 직업에 더 많은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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