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의 끝에서
지성희 지음 | 고정순 그림
킨더랜드 | 40쪽 | 1만6800원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 호기심 많은 고라니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발아래 부서지는 낙엽 소리로 길을 느끼고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는 빛을 보며 하늘을 상상하는 이 작은 생명체는 거대한 녹음의 경계가 궁금하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고요히 바라보는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면 시선을 따라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보자.
연둣빛 이파리들, 알록달록한 꽃봉오리들을 헤치고 숲의 끝에 다다른 고라니. 바람조차 길을 잃고 헤매는 선뜩한 모습을 보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갑작스레 나무들이 하나둘 스러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괴이한 소리를 내는 커다란 무언가가 땅을 찌르더니 풀들은 고개가 꺾여 흙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삽시간에 잿빛 공기가 숲을 덮치고, 싱그러운 고라니의 집은 회색으로 물든다.

짙은 녹색 나무들이 빽빽하게 줄 서 있던 고라니의 안식처엔 회색빛 높은 빌딩들이 숨 막히게 들어섰다. 이제 고라니는 새 보금자리를 찾으러 다시 숲의 경계로 나설 수밖에 없다. 고라니가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엔 누가 살고 있었을까. 끝으로 밀려난 존재는 결국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람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파괴한 땅, 그곳에 누가 있었는지를 떠올린다. 이 책은 갈 곳 잃은 생명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킨더랜드의 ‘동물권 그림책 프로젝트’를 잇는 네 번째 작품이다. 이유도 모른 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이야기다. 인간의 욕심으로 상처 입은 약한 존재들의 슬픔은 푸른 풀빛과 대비되는 회색 질감을 쌓아올려 그려냈다. 말없이 바라보는 고라니의 눈을 끝까지 마주한 독자라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한동안 그 숲의 끝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