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각장애인은 결재 하세월…장애인공단마저 이런다, 뭔일

2025-10-08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에서 10년간 시각장애인 웹 접근성을 평가해온 전맹 시각장애인 A씨(45)는 최근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한숨을 쉬었다. 시각장애인 노동자들은 웹페이지의 텍스트를 소리로 변환해주는 ‘화면낭독기’를 이용한다. 이에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에선 화면낭독기로 웹의 글씨들이 잘 읽히는지, 접속에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평가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웹 접근성도 여러 차례 평가한 A씨는 “전혀 글이 읽히지 않는 공공기관 업무창도 있었다”며 “설사 읽힌다고 해도 문장이 띄어쓰기 없이 나열되거나, 글자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읽혀 업무 이해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서 15년째 근무 중인 전맹 시장애인 교사 B씨(39)도 업무망 이용에 갈수록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는 “웹페이지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구조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며 “새 기능이 생기면 결재에만 하루종일 걸릴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근로지원인이나 다른 선생님의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해서 주요 업무에서도 배제되는 입장”이라고도 전했다.

민감정보도 다른 직원 도움받아 결재

이처럼 공공기관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뒀음에도 시각장애인 근로자의 업무망 접근성은 고려하지 않았단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공공기관의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전체 직원의 3.8%다. 또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위해 공공기관의 웹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문화체육관광부에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장애인개발원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장애인 관련 공공기관에서도 결재와 같은 핵심 업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 곳인데다, 원장을 포함해 중증 시각장애인 근무자 3명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결재창에 화면낭독기 접근이 안돼 결재안 상신이 불가한 상황이다. 원장만이 접근 가능한 민감정보를 다룰 때에도 다른 직원이나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에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인사와 같은 민감정보는 경영 직군이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전맹 시각장애인에 적용 가능한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개발 웹이 아니어서 고도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며 “내년에 업무망 업체를 바꾸면서 시각장애인 접근이 용이하도록 재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애인고용공단 업무망도 화면낭독기 호환 안돼

장애인 고용 촉진을 도모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공단) 업무망도 시각장애인이 주요 기능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이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단에 속한 120명의 장애인 노동자 중 6명이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지난 6월 노후화된 업무망을 변경하면서 내부 결재 시스템에서의 문서 열람과 기안 작성 등의 주요 기능이 화면낭독기와 호환되지 않고 있다. 공단은 “당분간은 근로지원인 지원과 보조공학기기 지원 등으로 보조 중”이라며 “시스템 유지·보수를 통해 주요 메뉴 접근성을 확보해나갈 것”이란 입장이다.

시각장애인 업무망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형식적 고용’이라며 차별과 다름없단 목소리가 나온다. 2017년부터 시각장애인의 온라인 쇼핑몰 접근성 소송에 참여해온 안동한 한국디지털장애인진흥원 총괄팀장은 ”뽑아놓고 업무망 접근이 안된다는 건 앞으로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며 ”디지털포용법에서 업무망과 공문에의 시각장애인 접근성 등을 명시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미화 의원은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니라 유리천장과 같은 구조적 문제“라며 ”장애인 정책의 중심에 있어야 할 공공기관부터 접근성 기준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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