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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도 인간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는다. 지난 2010년 조성된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카페거리(보카)'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의 카페와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옷가게, 쥬얼리숍 등 100여 개 업소가 옹기종기 모인 이곳은 용인은 물론 수도권 ‘핫플레이스’로 부각됐다. ‘신사의 품격’,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더해 한때 하루 유동인구만 3만 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매년 핼러윈 데이를 전후로 치러지는 각종 이벤트로 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쳤다. 맛집으로 소문난 A초밥집의 경우 월 매출 6000만 원을 찍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현재는 가맹점만 600개가 넘는 치킨프랜차이즈 ‘또봉이 통닭’도 이곳에서 작은 통닭집으로 출발했다. 호시절은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2019년 말 코로나19 여파로 유입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더니 2022년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가뜩이나 위축되던 상권을 한층 더 쪼그라들게 했다. 상인들은 매출은 반 토막, 유입인구는 반의 반토막이 났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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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진(61) 보카상점가상인회 고문은 “보카의 ‘생로병(生老病)'까지를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조성 초기만해도 풀 한 포기 없던 거리에 무작정 나무를 심기 시작한 그를 두고 일대 상인들은 처음에는 ‘돈키호테’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무가 무성해지고, 그늘이 늘어나자 그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상점가와 녹지가 조화를 이룬 보카의 독특한 풍경은 장 고문의 작품인 셈이다. 젊은 시절 잠실 롯데월드 설계에 관여하기도 한 실력가인 장 고문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보카의 쇠퇴기를 두고볼 수 없었다. 상인들과 함께 지혜를 짜냈다.
그 중 하나가 지자체가 중소벤처기업부와 협의해 지정하는 골목형 상점가다. 지역상권 되살리기의 일환인 골목형 상점가는 2000㎡ 이내의 면적에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가 일정 규모 이상 밀집해 있고 상인조직이 결성된 구역에 대해 신청할 수 있다. 지정이 되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등록과 각종 공모사업 참여 등 법적·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지정 요건을 정하는데, 2년 전까지만해도 보카는 ‘조례 밖 상권’이었다. 장 고문 등의 노력에 용인시가 응답한 것은 지난해 가을. 지역상권 되살리기에 고심하던 이상일 용인시장은 수차례 현장 조사를 거친 뒤 조례 개정을 통해 보카의 골목형 상점가 진입 장벽을 걷어냈다. 보카를 비롯해 7곳의 상권이 바뀐 조례 덕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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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는 일단 제도상으로는 원기회복을 할 기회를 얻었다. 시의 지원금을 종자돈으로 삼아 지역맥주 축제를 열어 떠났던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인프라가 좋은 만큼 정부 공모사업 참여를 위한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당장 가시적 효과는 크지 않지만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상인들은 골목형 상점가 지정이 보카의 소멸을 단순히 지연시키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김대덕(50) 보카상점가상인회 매니저는 “용인시와 협업해 관광네트워크 구성도 추진 중”이라며 “단순히 들르는 곳이 아닌 체류형 관광지까지 겸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다는 김태현(40) 용인관광민박 협동조합 부회장은 “보카는 인구밀집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이라며 “이 같은 경우는 미국에서도 매우 드물고 그래서 흥미롭다. 인근에 초등학교도 있어 난잡하지 않고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정주요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이 택지지정 된 지 20년 쯤 됐는데 상권의 생로병사 중에서 3기쯤 되는 것 같다”며 “골목형 상점가 지정으로 상권의 숨통이 트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씨엘로 커피숍 박시은(46) 대표도 “최근 5년 동안 단골 위주로 버텨왔다”며 “가만히 있기 보다는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지정이 매우 반갑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