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 바퀴 반'···총수들의 광폭 행보

2025-04-14

주요 기업 총수들이 트럼프 행정부발(發) '관세 전쟁'으로 수렁에 빠진 우리 산업을 건져내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일본부터 인도·중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올해만 총 6만km, '지구 한 바퀴 반' 거리의 대장정을 불사하며 돌파구를 찾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그룹 등 재계 총수는 연초부터 해외 거점에서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 들어 가장 굵직한 행보를 보인 인사는 단연 최태원 SK 회장이다. 그룹 총수이자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인 그는 사업 현안을 챙기면서도 명실상부 재계 맏형답게 민간 외교의 최전선에 나서며 활약을 펼쳤다.

먼저 최태원 회장은 1월엔 글로벌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5' 현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굴지의 기업 관계자와 소통하며 SK의 미래 사업 청사진을 재점검했다. 'AI(인공지능)' 트렌드로 고성능 반도체 수급이 산업계 공통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SKC가 준비하는 유리기판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눈길을 끌었다.

최태원 회장의 바쁜 스케줄은 계속됐다. 2월 그는 대한상의 차원에서 꾸려진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다시 한 번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트럼프 취임 이후 선명해진 현지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당시 경제사절단은 미국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면담을 갖고 동향을 살피고, ▲조선 ▲에너지 ▲원전 ▲AI·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장비 등 6대 분야 중심의 공고한 협력 관계를 재확인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8년간 우리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 규모가 1600억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철학을 거듭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건립을 포함한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하면서다. 그룹 핵심 사업인 자동차와 철강 등이 관세 정책의 영향권에 들자 31조원대 '선물 보따리'를 풀어 승부를 띄운 셈이다.

특히 정의선 회장이 제시한 '210억달러'라는 숫자는 지난 20년간의 투자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1986년 미국에 진출한 뒤 약 200억달러를 현지에 투입했는데, 앞으로 4년 안에 그보다 더 많은 자금을 쓰겠다고 약속한 격이어서다.

결과적으로 정의선 회장의 진심은 통했다. 재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투자 계획을 내놓고 관세에 대한 확답을 받아낸 그의 적극적인 행보가 그룹의 부담을 크게 낮췄다고 평가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글로벌 현장 경영을 재개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에 흔들리는 반도체·배터리·전장 등 전략 사업을 본궤도로 돌려놓으려는 포석이다.

지난달 22일 중국에 닿은 이 회장은 이튿날 개막한 고위급 발전포럼(CDF)에서 글로벌 기업 CEO와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또 CDF 폐막 전후 베이징·선전에 위치한 샤오미와 BYD의 전기차 공장을 찾아 경영진과 회동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삼성전자의 차량용 디스플레이 ▲오디오 ▲디지털 콕핏 등 제품 탑재 시나리오를 검토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동시에 이재용 회장은 지난달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진핑 국가주석과 글로벌 CEO 면담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구광모 LG 회장과 장인화 포스코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도 나란히 인도·호주·유럽 등 그룹의 전략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광모 회장은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인도와 중동·아프리카 시장 전초 기지로 통하는 UAE(아랍에미리트)를 둘러보며 '제2의 도약'을 위한 영업 태세를 가다듬었다. 인도에선 R&D·생산·유통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반의 경쟁력을 진단하고, 두바이로 이동해 중동·아프리카 시장 공략을 위한 중장기 사업전략을 재설계했다.

아울러 장인화 회장은 지난 7일 호주에서 본격적인 경영행보에 돌입했다. 글로벌 철강사가 모인 자리에서 산업의 현 주소와 미래를 조망하고, 호주 퀸즐랜드주의 세넥스에너지 가스전 현장을 방문해 에너지 밸류체인 강화 방안을 강구했다. 무엇보다 장 회장은 저탄소 공정 분야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포스코그룹의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도 했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막을 올린 유럽 최대 건설기계 박람회 '2025 바우마' 현장을 찾아 기술 알리기에 나선 두산밥캣 직원을 격려했다. 박 회장은 유럽 시장이 두산밥캣에 '제2의 홈마켓'이라는 점을 역설하며 혁신기술로 시장을 선도하자고 당부했다.

재계에선 그룹 총수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기업을 넘어 산업계의 불확실성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와중에 민간 외교관이자 실질적인 '협상 컨트롤타워'로서 우리 기업의 사업이 흔들임 없이 지속되도록 받쳐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