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록 사무치는 게 부모여도 결국 명치 끝에 백혀 사는 거는 자식이라. 부모는 죽으믄 하늘로 보내도 자식은 죽으믄 요기서(가슴에서) 살린다. 영 못 죽이고 여기서 살려.”(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중)
봄은 생명이 잉태되는 계절이다. 희망이 솟고 꿈이 영근다. 하지만 11년 전 봄은 꿈이 꺾이는 계절이었다. 제주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의 생명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생중계된 참사 현장에서는 허둥대는 국가를 목도했다. 침몰하는 배와 승객들을 내팽개친 선장은 직업윤리를 벗어던졌고, 학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던 어른들은 저 살기에 바빴다. 안전·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한없이 무력했고 부끄럽고 미안했다. 11번째 봄을 맞지만 지금도 명치 끝이 아프다.
참사 후에도 국가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로 파릇파릇한 생명을, 아리셀 공장 폭발 참사로 고국으로 돌아가 행복하자던 다짐을, 제주항공 참사로 여행 뒤 풀어놓을 이야기꽃들을 떠나보냈다. 지금도 도시에선 땅이 꺼지고, 내륙에선 대형 산불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국가는 그때마다 책임을 회피했고 점차 부끄러움도 잊었다. 이태원 참사 일주일 뒤 윤석열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2·3 내란 후 자진사퇴하며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고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3년 연속 세월호 기억식에 불참했다. 비상계엄으로 정치적·사회적 재난을 자초하고, 지근거리에서 막지 않은 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다닌다. 부끄러움은 언제까지 시민의 몫이어야 하나.
연대와 상생보다는 각자도생 사회로 변하고, 단죄되지 않은 국가는 안전보다는 비용과 편익을 앞세우려 한다. 이를 멈춰 세울 힘은 기억일 것이다. 16일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선상 추모식에서 한 유족은 “11년이든, 110년이든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할 그리움”이라 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11번째 봄, 세월호는 시민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