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잇따라 쏟아낸 급진적 변화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관세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관세보다 더 큰 손실을 안겨줄 수 있는 정책은 대학 및 이보다 더욱 광범위한 연구 분야에 대한 백악관의 공격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과학 분야를 선도해왔기에 마치 이것이 미국의 타고난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 분야의 선도국이 아니라 추종국에 가까웠다.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는 독일로 전체 수상자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다음은 영국으로 거의 20%를 수상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의 단 6%를 가져가는 데 그쳤다.
20세기 중반 3개의 강력한 요인이 과학계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첫 번째는 유럽 최고의 재능 있는 과학자들을 몰아낸 아돌프 히틀러의 출현이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이 중에는 특히 유대인이 많았다. 1932년까지 독일이 과학 분야에서 수상한 노벨상의 4분의 1은 독일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 유대인이 차지했다. 바로 이들이 미국 과학계의 중추를 형성했다. 1965년의 이민 개혁 이후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 최고의 고급 인력을 유치했다. 대부분 중국과 인도 출신 유학생인 이들은 미국에 정착해 연구실과 테크놀로지 관련 회사를 세웠다.
두 번째 강력한 요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다. 1945년까지 영국, 프랑스, 그리고 특히 패전국인 독일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으며 정부는 산더미 같은 전쟁 부채에 짓눌려 기능이 마비됐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이 전쟁으로 24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미국은 경제·기술·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채 전쟁을 끝냈다.
미국을 선두로 밀어준 세 번째 요인은 기초과학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혁신적인 결정이었다. 1950년대에 걸쳐 미국은 연구 및 개발에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2.5%를 지출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액수를 기초과학에 투자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미국이 유일했다. 투자는 혁신적인 모델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국의 대학들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정부의 연구기금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연방정부는 자금만 제공했을 뿐 직접 프로그램 자체를 운영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이 같은 경쟁과 자유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현대 미국 과학계를 탄생시켰다.
이들 3가지 요인이 지금 번복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적대적 인수와 수십억 달러의 연구자금 지원 중단 위협을 앞세워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과학계의 자존심인 국립보건원(NIH)과 국립과학재단(NSF)도 유린당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핵심적인 과학 분야에서 세계의 선도국이 됐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네이처 인덱스가 추적하는 82개의 유수 과학 저널에 실린 논문 수에서 미국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공학 및 기술 논문에서 중국은 이제 미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특허출원 건수에서도 더 이상 중국의 경쟁자는 없다. 전 세계 특허출원의 거의 절반은 중국에서 나온다. 심지어 세계 주요 대학 순위에서도 중국의 도약이 두드러졌다. 세계 500개 주요 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린 중국의 대학은 2010년 27개에서 2020년 76개로 껑충 뛰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154개에서 133개로 뒷걸음질을 쳤다.
중국이 따라잡지 못한 미국의 마지막 강점은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으는 능력이다. 2000~2014년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이민자였다. 2019년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업자의 거의 40%가 이민자였고 2015년 기준 국내 주요 암센터 전문 인력 가운데 30%(프레드허친슨)에서 62%(MD앤더슨)가 이민자였다. 그러나 이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학생 수백 명의 비자가 취소됐고 상당수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네이처 잡지는 미국 연구원들이 주축인 독자들을 상대로 타국으로의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조사에 응한 1600명 가운데 놀랍게도 75%가 출국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지난 100년에 걸쳐 미국이 쌓아 올린 비범한 힘의 토대다. 트럼프 취임 후 고작 100일 만에 이 토대가 해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