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1700년대 지어진 콜레기엔 교회 안의 무대는 현대 무대에 비해 당연하게도 작았다. ‘오케스트라’라 부르기 힘든 악기 연주자들의 조합은 21명이었고, ‘합창단’이라 하기에 소박한 성악가들은 16명이었다. 이 성악가들이 군중이 되었다가, 예수 또는 그의 제자들이 됐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벨기에 복스 루미니스가 함께 들려준 음악은 J. S. 바흐의 ‘요한 수난곡’. 규모가 작은 앙상블은 소리는 투명했다. 적은 숫자의 음악가들은 무대에서 소리를 만들어 객석에 전달하는 대신, 청중을 무대 위로 끌어들여 귀 기울이게 만든다. 올해로 105년이 된 잘츠부르크 축제는 ‘운명’이라는 주제로 첫 주의 공연들을 기획했고, ‘요한 수난곡’은 그중 하나였다. 운명과 고통을 성찰하는 데에 소규모 편성이 제격이었다.
거대한 합창 대신 작은 울림의 힘
숫자 줄어 더 깊어진 바흐의 음악
웅장함 넘어 인간의 목소리 듣다

음악은 종종 규모가 작은 만큼 더 진실되다. 전설적인 이름인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Philippe Herreweghe·78)도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흐의 목소리를 ‘더 크게’가 아니라, ‘더 진실되게(more truthfully)’ 전달하려 한다.” 현대적으로 발전한 악기 대신 300년 전 바흐 시대의 악기를 사용하고, 연주자 규모 또한 적게 유지하는 이유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향수 또는 순수주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헤레베허가 음악 동료들과 함께 연주 단체를 만들었던 1970년대만 해도, 바흐를 연주하는 무대는 더 거창했다. “당시 바흐는 대규모 합창단이 낭만적으로 연주하곤 했다.” 그가 만든 단체인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즉 벨기에 겐트의 음악가 모임도 80명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더 투명하고 인간적인 해석을 목표로 하게 됐다.”
음악가들의 규모는 줄어들었다. 헤레베허는 다음 달 18일 서울에서 바흐의 마지막 성악 작품인 ‘B단조 미사’를 공연하는데, 내한 합창단 규모는 13명이다. 여기에 솔로 성악가 5명을 더해도 18명이고 오케스트라는 24명이다. 지휘자까지 총 43명의 단출한 규모다. 헤레베허는 “이 작품의 무대에 통상 사용되는 32명 합창단에 비교해도 18명의 소리는 친밀감과 일체감에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거창하고 화려한 소리보다 작고 소박한 소리가 더 진실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렇다면 음악가들의 규모는 얼마나 작아야 할까? 의학도 출신으로 정밀한 분석을 자랑하는 헤레베허는 “우리는 가장 오래된 악보, 또 논문에서 시작해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었다”고 했다. 실제로 바흐 시대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면 1700년대 바흐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동원할 수 있었던 연주자는 25명 남짓이었다.
또 B단조 미사가 이웃 동네인 드레스덴에 내민 구직서와 같은 작품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바흐는 자신의 직장이던 라이프치히의 비전문적인 행정가들, 그리고 음악가에 대한 낮은 처우에 불평하며 드레스덴에 음악 작품을 써서 보내 이직을 희망했고, 이는 훗날 B단조 미사에 흡수됐다. 음악학자 이가영에 따르면 당시 드레스덴 궁정에서 연주하던 악기 연주자는 25~40명 선이었다. 헤레베허가 처음 80명에서 40명 수준으로 음악가들의 숫자를 줄인 이유를 알 수 있다.
헤레베허는 B단조 미사를 1988년부터 2012년까지 총 3번 녹음했다. 그사이에 작은 규모의 연주는 이 작품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표준이 됐다. 좀 더 극적이고 풍부하며 낭만적인 해석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투명하고 정제돼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더 크게’ 대신 ‘더 진실되게’라는 신념은 굳건하다. “과거의 바흐는 위대한 전통의 일부였고, 장엄하고 고결하지만 다소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음악과 우리는 더 친밀하다. 인간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만 200번 이상 지휘했지만 그때마다 늘 새로운 것을 본다고 했다.
많은 것이 거창하고 화려해지는 시대에 작아지고 투명해지는 것의 가치가 이들의 음악에 있다. 위대한 작품이 꼭 웅장할 필요는 없다.
김호정 음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