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101번이나 경주에 출전해 화제가 됐던 경주마가 있다. 12년 전인 2013년 은퇴한 ‘차밍걸’이 그 주인공이다. 매 경기 거액의 상금을 걸고 순위를 다투는 경마는 그 어떤 종목보다 냉정한 스포츠다. 차밍걸이 세운 101연패는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차밍걸이 다시 소환된 건 마주였던 변영남(83)씨 때문이다. 변씨는 34년째 시각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치과 의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변씨를 15일 서울역 인근 동자동의 요셉의원에서 만났다. 건물에 ‘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하다’는 문구를 내건 요셉의원은 노숙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시설이다.
그는 매주 화요일 오후 요셉의원에서 발치, 충치 치료, 보철 등 진료 봉사를 한다. 이날은 치아를 모두 상실한 환자의 틀니를 맞추는 처치를 했다. 변씨는 “참고 참다가 치아가 매우 나빠진 후에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 치료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요일에는 격주에 한 번 서울 성동구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흰색 가운을 입는다. 1991년부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다가 1993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3년 전엔 50년 가까이 운영했던 치과를 폐업하고 현업에서 물러났고, 지난 8월부터는 요셉의원에서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며 “내가 하는 일이 도움이 돼 기쁘다. 봉사를 마치고 나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봉사 활동은 언제까지 할 거냐는 질문엔 “힘이 닿을 때까지”라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행려자 등 소외된 이웃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은 차밍걸에 쏟았던 애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차밍걸은 체구가 작아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려야 했지만 회복도 빨랐다. 다른 말이 두 달에 한 번 달릴 때 차밍걸은 한 달에 두 번 경주에 나서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팬들은 일확천금을 해본 적 없고 소액의 출전 상금을 자주 벌어들이는 차밍걸을 두고 ‘서민 같은 말’이라며 공감하면서 응원했다. 1등 한 번 못했지만 차밍걸이 한국 경마사에 이름을 남긴 배경이다.

그는 “예전엔 외국인 노동자를 뭐하러 돌보냐는 시선이 있었다. 난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헌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노숙자와 도시 빈민에 대해선 “아직도 서울역 인근엔 쪽방촌이 많다. 누구든지 이 같은 시련을 겪을 수 있다”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2년 전 차밍걸 은퇴 때 변씨는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때는 왜 자원봉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묻자 “마주와는 관련 없는 일이다. 자원봉사하는 걸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답했다. 30년 넘게 이어 온 선행이 차츰 주변에 알려지면서 그는 지난해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뽑는 ‘올해의 치과인상’을 수상했다. 지난 5월에는 법무부가 주관한 ‘세계인의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차밍걸은 경주마에서 은퇴한 뒤 경기도의 한 목장에서 승마용 말로 변신을 시도하던 중 장이 꼬이는 병으로 2015년 숨졌다. 그러나 변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는 “모자라고 결핍된 것을 아끼는 차밍걸 정신은 가톨릭의 정신, 예수의 마음과도 통한다”고 말했다. 변씨는 2년 전 마주를 그만뒀지만 서울마주협회는 차밍걸을 기억하고,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실천한 변 전 마주의 선행에 동참하는 취지로 요셉의원에 1000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